[[분류:프랑스의 남성 정치인]][[분류:1868년 출생]][[분류:1952년 사망]][[분류:마르티그 출신 인물]] ||||<:>[[파일:Maurras_Harcourt_1937.jpg|width=100%]]|| || '''이름''' ||<:>샤를 모라스 (Charles Maurras)|| ||<:>'''출생'''||<:>[[1868년]] [[4월 20일]]|| ||<:>'''사망'''||<:>[[1952년]] [[11월 16일]]|| ||<:>'''사상'''||<:>[[국민보수주의]], [[반자유주의]] [[오를레앙주의]], [[반동주의]]|| [목차] [clearfix] == 개요 == 샤를 모라스(1868년 - 1952년)는 [[프랑스 제3공화국]] 시절 활동했던 프랑스 작가이자 극우 정치인이다. == 생애 == 모라스는 보수주의적 중산층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가톨릭 고등학교에서 공부했고, 1885년에 파리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890년대에도 프랑스 사회에서는 1871년 [[보불전쟁]]에서 독일을 상대로 패배한 기억 때문에 강력한 반독감정이 팽배해 있었고 알자스 로렌 지방을 되찾자는 [[실지회복주의]]를 주장하는 정치 운동가들이 있었다. 1894년부터 유대인 출신 프랑스 장교인 드레퓌스가 독일에게 군사기밀을 넘겨주었다는 [[드레퓌스 사건]]이 터지고 프랑스 사회가 [[반드레퓌스파|드레퓌스가 유죄라고 주장하는 파]]와 [[드레퓌스파|무혐의라고 주장하는 파]]로 나뉘었을 때, 샤를 모라스는 전자에서 활약한다. [[반자유주의]], [[반유대주의]]자였던 모라스는 [[오를레앙주의]] 기반 극우정당인 [[https://en.wikipedia.org/wiki/Action_Fran%C3%A7aise|악시옹 프랑세즈]] (Action Française)에 가입하고 1908년부터는 동명의 기관지에서 기자로 활동한다. 그는 프랑스를 왕정으로 융합하고 1789년 [[프랑스 혁명]]부터 프랑스가 쇠퇴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하는 [[https://en.wikipedia.org/wiki/Integral_nationalism|통합민족주의]] (Nationalisme intégral)라는 사상의 주요 사상가가 된다. 1922년에는 [[베니토 무솔리니]]와 스페인의 [[프란시스코 프랑코]]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고, [[1934년 프랑스 폭동]]에 참여하며 1936년에 유대인 출신 국무총리 [[레옹 블룸]]을 살인 협박했다. [[비시 프랑스]] 시절 [[레지스탕스]]와 연합국을 비판했다. 1945년에 나치 협력자들과 함께 재판장에 서고, 공민권을 박탈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