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조선 좌리공신)] 徐居正(1420~1488) [목차] [clearfix] == 개요 == [[조선]] 전기의 [[훈구파]] 문신. [[15세기]] 관학을 대표하는 학자이자 시인 겸 문장가로 꼽힌다. 호는 사가정(四佳亭).[* [[서울 지하철 7호선]] [[사가정역]]은 여기에서 유래하였다.] 모든 [[서씨]] 시조 [[서신일]](徐神逸) 시제는 (음력) 매년 10월 첫째 토요일 오전 11시에 효양산 이천시 부발읍 산촌리 산21(경기 이천시 부발읍 산촌리 329)에서 거행된다. [[서필]] (徐弼)선생,[[서희]] (徐熙)선생 시제는 (음력) 매년 10월 첫째 토요일 오후 2시에 경기 여주시 산북면 후리에서 거행된다. [[이천 서씨]]는 통일신라 아간대부 [[서신일]](徐神逸),내의령 [[서필]](徐弼),내사령 [[서희]](徐熙),문하시중 [[서눌]](徐訥) 좌복야 [[서유걸]](徐惟傑),평장사 [[서정(고려)|서정]](徐靖),우복야 [[서균(고려)|서균]](徐均) 판대부사 [[서린(고려)|서린]](徐嶙), 평장사 [[서공(고려)|서공]](徐恭) 추밀원사 [[서순(고려)|서순]](徐淳) 등 7대가 연속 재상이 되어 고려의 최고 문벌 귀족 가문으로 성장한다. 고려 초기에 나라의 기틀의 튼튼히 한 [[서필]](徐弼)이다. 이어 손자 [[서희]](徐熙)와 증손자 [[서눌]](徐訥) [[서유걸]](徐惟傑) [[서유위]](徐惟偉) [[서주행]](徐周行), 고손자 [[서정(고려)|서정]](徐靖) [[서존]](徐存),[[서균(고려)|서균]](徐鈞) [[서린(고려)|서린]](徐璘), [[서원(고려)|서원]](徐元) [[서공(고려)|서공]](徐恭) [[서성(고려)|서성]](徐成) [[서순(고려)|서순]](徐淳),[[서숭조]],[[서희찬(고려)|서희찬]],[[서능]](徐稜),[[서효손]],[[서신계]], [[서린(고려1)|서린]](徐鱗),[[서성윤]],[[서념]],[[서원경(고려)|서원경]],[[서충(고려)|서충]],[[서신(고려)|서신]],[[서윤(고려)|서윤]],[[서후상]],[[서윤현(고려)|서윤현]] 등이 15대를 이어 재상이 되었다. 대구달성서씨([[달성 서씨]] [[대구 서씨]])(大丘達城徐氏) 계보는 [[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 정2품.부총리 재상)-[[서필]](徐弼 내의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희]](徐熙 내사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주행]](徐周行 달성군)-[[서한(고려)|서한]](徐閈 군기소윤 종3품.차관)-[[서신(고려1)|서신]](徐愼 이부판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무질]](徐無疾 밀직사 종2품.부총리 재상)-[[서진(고려)|서진]](徐晉 판도판서 정3품.장관)-[[서기준(고려)|서기준]](徐奇俊 문하시중찬성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영(고려)|서영]](徐穎 문하시중찬성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균형]](徐鈞衡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 [[서익진]](徐益進 판전객시사 종2품.부총리 재상)-[[서침]](徐沈 조봉대부 정3품.장관) [[서의(고려3)|서의]](徐義 호조전서 정3품.장관) 이다 [[연산 서씨]] 계보는 [[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 정2품.부총리 재상)-[[서필]](徐弼 내의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희]](徐熙 내사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유걸]](徐惟傑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존]](徐存 병부상서 정3품. 장관)-[[서청습]](徐淸習 판전의시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효리]](徐孝理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찬]](徐贊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희팔]](徐希八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직]](徐稷 연성군)-[[서준영(고려)|서준영]](徐俊英 연성군)- [[서보(고려1)|서보]](徐寶 공조전서.정3품 .장관) 으로 이어진다. [[부여 서씨]] 계보는 [[온조왕]](溫祚王)-[[근초고왕]](近肖古王)-[[무령왕]](武寧王)-[[의자왕]](義慈王)-[[부여융]](扶餘隆)-[[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 정2품.부총리 재상)-[[서필]](徐弼 내의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희]](徐熙 내사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유걸]](徐惟傑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존]](徐存 병부상서 정3품. 장관)-[[서청습]](徐淸習 판전의시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효리]](徐孝理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찬]](徐贊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희팔]](徐希八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춘(고려)|서춘]](徐椿 판내부사사 정2품.부총리 재상) [[서박]](徐樸 봉례공) 으로 이어진다. 남양당성 서씨([[남양 서씨]] [[당성 서씨]]) 계보는 [[서간(통일신라)|서간]](徐趕 태사.남양군. 종1품. 국무총리 재상)-[[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 정2품.부총리 재상)-[[서필]](徐弼 내의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희]](徐熙 내사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유걸]](徐惟傑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존]](徐存 병부상서 정3품. 장관)-[[서청습]](徐淸習 판전의시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효리]](徐孝理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찬]](徐贊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희팔]](徐希八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적(고려)|서적]](徐迪남양군)으로 이어진다.  중화서씨(中華徐氏) 계보는 단군조선 [[여수기]](余守己)-번한조선(番韓朝鮮) [[서우여]](徐于餘)-고조선(古朝鮮) 소호(少昊), 고도(皋陶), 백익(伯益)의 아들 약목(若木)-서국(徐國)에 30세 서구왕(駒王=徐駒王), 32세 [[서언왕]](徐偃王)-진나라 재상 서복(徐福)-삼국시대(三國時代) 서선(徐宣),[[서유자]](徐孺子; 徐穉) [[서서]](徐庶), 오(吳) 나라에는 서성(徐盛),[[부여]] 동명왕(東明王),백제 [[온조왕]](溫祚王)[[근초고왕]](近肖古王)[[무령왕]](武寧王)[[의자왕]](義慈王),신라 [[서두라]](徐豆羅)- 남송(南宋) 서희(徐煕), 서도(徐道), 서도(徐度), 서숙향(徐叔嚮), 서중융(徐仲融), 서문백(徐文伯), 서사백(徐嗣伯)- 북제(北齊) 서지재(徐之才), 서임경(徐林卿), 서동경(徐同卿)- 원위(元魏) 서건(徐謇), 서웅(徐雄)- 수 나라 서민제(徐敏齊) -.명나라 말기 호족 서수휘(徐壽輝)청나라- 지리학자 서진객(徐震客),대학자 서광계(徐光啓) [[서씨일가연합회]] [[https://band.us/@seosarang]] [[https://open.kakao.com/o/gBQB1q6c]] == 가족 == 시조: [[서신일]] (徐神逸 아간공. 종1품) * 고고고고고고고고고조할아버지: [[서필]](徐弼)(종1품 내의령) * 고고고고고고고고고조할머니 : [[평양 황씨]](平壤黃氏) ** 고고고고고고고고조할아버지 : [[서희]](徐熙)(종1품 내사령) *** 큰고고고고고고고조할아버지: [[서눌]](徐訥)(종1품 문하시중) *** 큰고고고고고고고조할아버지 : [[서유걸]](徐惟傑)(정2품 좌복야) *** 큰고고고고고고고조할아버지 : [[서유위]](徐惟偉)(정3품 장야서령) *** 고고고고고고고조할아버지: [[서주행]](徐周行)(달성군) **** 고고고고고고조할아버지: [[서한(고려)|서한]](徐閈 정4품 군기소윤) ***** 고고고고고조할아버지: [[서신(고려1)|서신]](徐愼 정2품 이부판사) ****** 고고고고조할아버지: [[서무질]](徐無疾 종2품 밀직사) ******* 고고고조할아버지: [[서진(고려)|서진]](徐晉 정3품 판도판서) ******** 고고조할아버지: [[서기준(고려)|서기준]](徐奇俊 정2품 문하시중찬성사) ********* 고조할아버지: [[서영(고려)|서영]](徐穎 정2품 문하시중찬성사) ********** 큰증조아버지: [[서균형]](徐鈞衡 종2품 정당문학) *********** 큰할아버지: [[서침]](徐沈 정3품 조봉대부) ************ 큰아버지 : [[서문한]](徐文翰 현감) ************* 삼촌 : [[서제]](徐濟, 현감공파(縣監公派) ************* 삼촌 : [[서도]](徐渡, 학유공파(學諭公派) ************** 조카: [[서지원(조선)|서지원]](徐智元 학자) *************** 증조카: [[서윤(조선)|서윤]](徐尹 참봉(參奉)) *************** 증조카: [[서괄]](徐适 훈도(訓導)) *************** 증조카: [[서세]](徐洗찰방(察訪)) *************** 증조카: [[서부(조선)|서부]](徐浮 목사(牧使)) ************** 조카: [[서인원(조선)|서인원]](徐仁元 목사) ************** 조카: [[서용원(조선)|서용원]](徐勇元 생원) ************** 조카: [[서숙원]](徐叔元 생원) ************* 삼촌 : [[서섭(조선)|서섭]](徐涉. 판서공파(判書公派) ************ 큰아버지 : [[서문간]](徐文幹 현감) ************* 삼촌 : [[서근중]](徐近中, 감찰공파(監察公派) ************ 큰아버지 :[[서문덕]](徐文德 현감) ************ 큰할아버지 : [[서습]](徐漝 생원) ************ 큰할아버지 : [[서환]](徐渙 생원) ********** 증조아버지: [[서익진]](徐益進 종2품 판전객시사) *********** 할아버지: [[서의(고려3)|서의]](徐義 정3품 호조전서) ************ 아버지: [[서미성(조선)|서미성]](徐彌性 정3품 목사(牧使)) ************* 형: [[서거광]](徐居廣 언양현감) ************** 조카:[[서팽소]](徐彭召 사헌부장령) ************* 본인: [[서거정]](徐居正 좌찬성 종1품) ************** 아들: [[서복경]](徐福慶)(서자(庶子 사가정파) * 큰고고고고고고고고고조할아버지 : [[서목]](徐穆)(종1품 문하시중.이천백) == 생애 == [[세조(조선)|수양대군]]의 오른팔 중 1명[* [[김시습]]도 [[신숙주]]를 변절자라고 길거리에서 욕함에도 신숙주가 뭐라고 못하고 그냥 서둘러 가도록 한 거와 달리 서거정은 배신자라고 비난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서거정은 과거 급제 이전인 20대 초부터 수양대군과 친하게 지내고 수양대군과 같이 24살에 [[명나라]]로 다녀오는 비서직을 맡았을 정도로 처음부터 수양대군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명나라로 가던 길에 서거정은 갑자기 깨어나 울었는데 놀란 수양대군이 왜 그러냐고 하자 "꿈에 갑자기 [[달]]이 [[구름]]에 가려졌사옵니다. 달은 [[어머니]]를 뜻하는데 이런 것은 어머니에게 안 좋은 일이 있는게 틀림없사옵니다!"라고 간청하여 수양대군이 허락해 조선으로 돌아와 어머니가 갑작스런 병으로 별세하여 [[장례]]에 참가했다는 [[야사(역사)|야사]]도 있다.][* 서거정이 길을 가는데 김시습이 비아냥거린 야사도 있다. 하지만, 서거정도 질소냐? 라는 듯이 멈춰서서 말로 대꾸하여 한참을 서로 디스했다는 이야기이다. 결국, 둘 다 서로를 입으로 못 이긴다고 인정하고 가던 길을 가버렸다고 한다.]으로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한 후 당시 사명(辭命: 왕명을 전달하는 외교 문서)의 대부분을 전담한 인물이다. 세조 때에는 공조참의ㆍ예조참의ㆍ이조참의ㆍ형조참판ㆍ예조참판ㆍ형조판서ㆍ성균관지사ㆍ예문관대제학 등 주요 [[관직]]을 연이어 제수하기도 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경국대전]](經國大典), [[삼국사절요]](三國史節要),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동문선]](東文選), [[동국통감]](東國通鑑), [[오행총괄]](五行摠括), [[동인시화]](東人詩話), [[태평한화골계전]](太平閑話滑稽傳), [[필원잡기]](筆苑雜記), [[사가집]](四佳集), [[역대연표]](歷代年表), [[연주시격언해]](聯珠詩格言解), [[동인시문]](東人詩文), [[향약집성방]]언해(鄕藥集成方言解), [[마의서]](馬醫書), [[유합(서적)|유합]](類合) 등이 있다. 그 외에 우리나라 최초의 [[족보]]인 [[안동 권씨]] 성화보(成化譜)를 완성하여 간행하기도 했다. 법전ㆍ역사ㆍ지리ㆍ문학 등의 분야에 걸쳐서 활약했다고 할 수 있다. 서거정의 [[역사]] 의식은 당대 정치권에 많은 변화를 일으켰는데 먼저 『삼국사절요(三國史節要)』·『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동국통감(東國通鑑)』에 실린 서거정의 서문과 『필원잡기(筆苑雜記)』에서는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의 세력이 서로 대등하다는 이른바 삼국균적(三國均敵)을 내세우고 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의 서문에서는 우리나라가 단군(檀君)이 조국(肇國: 처음 나라를 세움)하고 기자(箕子)가 수봉(受封: 봉토를 받음)한 이래로 삼국·고려시대에 넓은 강역을 차지했음을 자랑하고 있으며 이러한 영토에 대한 자부심과 역사 전통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중국의 『방여승람(方輿勝覽)』이나 『대명일통지(大明一統志)』와 맞먹는 우리나라 독자적 지리지로서 편찬하였음을 내세웠다. 『동문선(東文選)』에서는 중국과 다른 우리나라 한문학의 독자성을 내세우면서 우리나라 역대 한문학의 정수를 담았음을 표방했다. 서거정이 주동해 편찬된 사서·지리지·문학서 등은 전반적으로 [[한국]]의 독자성과 위대함을 알리는 쪽에 치중하였으나 훗날 [[성종(조선)|성종]]의 왕명에 따라 [[사림파]] 인사의 참여하에 내용들이 개찬되었다. 많은 문화적 업적을 남겼지만 말년에는 대거 등용된 사림들과 대립각을 세우면서 투합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성종 대에 등용된 사림들이 작성한 실록에는 부정적인 소인배로 묘사되었다. >조정에서는 가장 선진(先進)인데, 명망이 자기보다 뒤에 있는 자가 종종 정승의 자리에 뛰어오르면, 서거정이 치우친 마음이 없지 아니하였다. 서거정에게 명하여 후생(後生)들과 더불어 같이 시문을 지어 올리게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닌데, 서거정이 불평해 말하기를 “내가 비록 자격이 없을지라도 사문(斯文)의 맹주로 있은 지 30여 년인데, 입에 젖내 나는 소생(小生)과 더불어 재주 겨루기를 마음으로 달게 여기겠는가? 조정이 여기에 체통을 잃었다.”하였다. 서거정은 그릇이 좁아서 사람을 용납하는 양(量)이 없고, 또 일찍이 후생을 장려해 기른 것이 없으니, 세상에서 그를 작게 여겼다. >성종실록 1488년(성종 19) 12월 24일 [[15세기]] [[훈구파]]가 점차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고 [[16세기]] [[사림파]]의 시대가 열리는 상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문구라고 할 수 있다. 1488년 향년 69세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이 때 ‘문충(文忠)’이란 [[시호]]를 받았다. == 애묘가 == [[http://www.catnews.net/bbs/board.php?bo_table=G203&wr_id=106|출처 : 역사툰]] [[https://www.instagram.com/p/CbrBsKhpgBC/?igshid=YmMyMTA2M2Y=|출처 : 인스타@zzgoro]] == 외부 링크 ==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76960&cid=59015&categoryId=59015|인물한국사 : 서거정 세종에서 성종대까지 문병(文柄)을 장악했던 학자]]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74017&cid=46622&categoryId=46622|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서거정]] * [[https://ko.wikipedia.org/wiki/서거정|한국어 위키백과 : 서거정]] [각주] [[분류:1420년 출생]][[분류:1488년 사망]][[분류:조선의 시인]][[분류:조선의 좌리공신]][[분류:형조판서]][[분류:대구 서씨]] [include(틀:포크됨2, title=서거정, d=2022-07-14 03:4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