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위서)] 徐奕 생몰년도 미상 [목차] == 개요 ==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의 위나라의 인물이며 자는 계재(季才)로 서주 낭야국 동완현 사람. == 생애 == 강직해 교우관계가 적었다고 하며, 전란을 피해 강동으로 가서 [[손책]]이 그를 임용한다. 손책이 그를 성심성의껏 예절을 다해 그를 임용했는데도 불구하고 서혁은 성과 이름을 바꾸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강동을 탈출했으며, 196년에 [[조조]]가 사공에 임명되면서 서혁을 불러 연속에 임명한다. 211년에 [[마초]]가 반란을 일으키니 정벌에 종군했는데, 이 때 새로 얻은 관중 땅에 [[한수(삼국지)|한수]]가 있고 이민족들이 호심탐탐 노리는 등 불안정한 상황이라 조조는 서혁을 승상장사로 임명해서 장안에 남기니 그의 활약에 장안 사람들은 서혁의 위신을 칭찬한다. 후에 옹주자사로 전임되고 중앙으로 돌아와 동조연으로 임명되었으며, 당시 그의 성품 때문에 [[모개]]와 같이 [[정의(삼국지)|정의]]의 모함으로 죽을 위기에 처했지만 서혁은 끝까지 동요됨이 없으니 이 때 한 사람이 "무릇 사어의 강직함을 거백옥(거원)의 지혜와 비교하면 어떻겠습니까? 정의는 지금 신분이 높습니다. 그에게 머리를 숙이게 하는 일을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으니 서혁은 >조공이 총명함과 높은 덕을 갖고 있다면 정의가 어찌 오랫동안 그런 그릇된 행위를 하겠소! 또 부정을 갖고 있는 군주에 임용된 자에 대해서는 나는 몸을 지킬수 있소. 그대는 어찌 다른 일로써 나를 바르게 하오. 라고 하니 서혁은 결국 [[환계]]의 덕택으로 목숨을 건진다. 조조가 [[손권]]을 정벌하러 가며 다음과 같은 말과 함께 서혁을 유부장사로 임명한다. >그대의 충성과 절개는 고인들도 미치지 못하지만 약간 지나치게 엄하오. 옛날 서문표는 가죽을 허리에 차고 그 부드러움을 보면서 자신의 엄함을 누구러뜨렸소. 무릇 유약함으로써 강함을 제압할 수 있는 자, 이것이 내가 그대에게 바라는 것이오. 지금 그대에게 남아 지키는 일을 통괄하도록 한다면 나에게는 다시 돌아볼 걱정이 없을 것이오. 그 후 213년에 [[조조]]가 위공으로 임명되면서 서혁은 상서가 되었으며, 이어서 관리 임용에 관련된 일을 하다가 상서령으로 승진한다. 219년에 [[위풍]]의 난이 일어나 중위 [[양준]]이 좌천되었으며, 조조가 이에 대해 양준을 대신할 [[제갈풍]] 같은 사람이 없느냐고 하자 전에 정의의 마수로부터 서혁을 구해준 적이 있는 환계가 나와 서혁이 그런 자라고 말해 조조는 서혁을 다음과 같은 편지로 불러 명령한다. >옛날 초나라에는 자옥이 있었으므로 [[진문공]]은 초나라를 격파해 근심거리를 떨쳐 버렸고, 전한 시대에는 급암이 조정에 있었으므로 화남왕은 반역의 음모를 좌절시켰소. [[시경]]에서 '방지사직'이라고 한 것은 그대를 일컫는 것이오! 서혁은 수 개월 간 중직에 있다가 물러나기를 청하나 [[조비]]는 오히려 그를 간의대부로 승진시켰는데, 그러나 오래 지나지 않아 죽으니 조비는 회동할 때마다 한탄하며 서혁의 사람됨을 생각하고 그의 아들이 없었기에 족자 [[서통]]을 랑으로 임명해 후사를 받들도록 했다. [[진수(역사가)|진수]]가 평하길 엄격함을 존중했고, 그 시대의 명사가 되었다고 했다. == 창작물에서 == || [[파일:서혁.jpg|width=400]] || || [[삼국지 14]] 일러스트 ||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삼국지 14]]부터 등장하며 능력치는 통솔 25, 무력 11, 지력 60, 정치 77, 매력 71이며 일러스트는 두 손으로 홀이라는 막대를 들고 있다. 개성은 규율, 위무, PK에서는 감수 개성이 추가되었고 주의는 왕도, 정책은 정령철저 Lv 3, 진형은 학익, 전법은 견제, 친애무장은 없고 혐오무장은 [[손책]], [[정의(삼국지)|정의]]다. [[분류:한나라 주자사]][[분류:조위의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