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attachment/Seokgwangryeol.jpg|width=100%]]}}} || || '''이름''' ||석광렬(石光烈)|| ||<|2> '''출생''' ||[[1968년]] [[9월 2일]][* 연예계 활동 당시에는 1970년 9월 21일생으로 했다.] || ||[[경기도]] [[양주군]] 주내면(현 [[양주시]] 시내) || ||<|2> '''사망''' ||[[1994년]] [[8월 1일]] (향년 25세) || ||[[서울아산병원]]|| || '''가족''' ||아버지 석가화^^(1935년~2022년)^^[* 1994년 9월 2일에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94090300329117024&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4-09-03&officeId=00032&pageNo=17&printNo=15189&publishType=00010|서울시민상을 받고]] 12월 31일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94123100209131001&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4-12-31&officeId=00020&pageNo=31&printNo=22728&publishType=00010|보신각 제야의 종 타종자로 선정된 것]] 외엔 소식이 전해지지 않다가 2022년에 그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에서 '''[[무연고 사망자|무연고자]](!)로 사망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향년 87세. [[https://www.beminor.com/news/articleView.html?idxno=22919&page=6&total=1240|#]] 아들인 석광렬이 유일한 자식인데다 먼저 사망했기에 홀로 쓸쓸한 말년을 보낸 채 사망했다. 무연고자인 걸 보면 모친도 이미 돌아가신 듯하다.][* 당시 그의 매니저였던 사람이자 1990년대 말까지 석가화씨를 모셨던 이강석(1994년 당시 36세) 씨의 증언에 의하면 어머니 송신자 씨는 이미 2000년대 초반에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 '''신체''' ||178cm, 70kg|| || '''직업''' ||[[배우]]|| || '''종교''' ||[[불교]]|| || '''데뷔''' ||1993년 KBS2 미스터리 멜로 금요일의 여인[br] '강문영의 어둠 속의 미소'|| [목차] [clearfix] == 개요 == [[대한민국]]의 [[배우]]. [[이종원]], [[이정재]], 이리노, [[조문정]][* 1970~1994, 교통사고로 안타깝게 요절했다. 생전에 남긴 작품이 공룡선생 단 1편 밖에 없다. 더 안타까운 점은 공룡선생에 출연중에 사망했다는 점이다.] 등처럼 모델 출신으로 연기 생활을 시작한 인물이기도 하다. == 생애 == 1968년 9월 2일, 경기도 양주군 주내면에서 아버지 석가화와 어머니 송신자 슬하의 [[무녀독남]] 외아들로 태어났다. 부친은 당초 아들의 이름으로 광직, 원석, 원렬 등을 생각해내다가 작명소에 물어본 결과 '광렬'이 출세할 것 같은 이름이라 해서 지었다. 어릴 적부터 화가를 꿈꾸다가 점차 크면서 디자이너 쪽을 꿈꾸기도 했고, 고교 시절 서문여자고등학교 앞 햄버거 가게에서 일하다가 군 복무 당시 타고난 운동실력을 밑바탕삼아 스케이트 선수로 뛴 바 있었다. 1988년경에는 KBS 무용단 '짝궁들' 1기 출신인 친구 누나의 권유로 모 광고기획사에 들어가 청바지 카탈로그 모델로 모델계에 입문하여 100여편의 광고에 출연했고, 특히 1992년에 세계물산(현 SG세계물산)의 아웃도어 브랜드 [[https://youtu.be/S-tkvAwmmcw|'옴파로스' 의 CF]][* 실제 방영은 1993년. 이 CF는 '바람이고 싶어~ 강물이고 싶어~ 그대 기억 속에~ 그리움으로 남고 싶어~'라는 노랫말로 유명하다. 이 브랜드는 90년대 한때 인기를 끌었으나 2000년대 이후 인기가 저조해지며 사라졌다.]에 나와 대중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았다. 후술할 1994년 <동아일보> 인터뷰 기사에 따르면 피아노 실력이 전무함에도 불구하고 촬영 보름 전부터 피나는 연습으로 익혀가며 대역을 쓰지 않은 채 직접 쳤다고 한다. 이를 바탕으로 1993년 [[남기남]] 감독의 영화 <소녀 18세>를 시초로 연예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인 뒤, KBS2 <토요대행진> 코너 '진실과 대답'에서도 활약하다가 1993년 미스터리 멜로 '금요일의 여인'과 1994년 '한쪽 눈을 감아요', '남자는 외로워'에 연이어 출연하면서[* 이때의 이정재와 이병헌은 석광렬에 비해 인지도도 낮았을뿐더러 연기력도 당시에는 상당히 좋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었다.] 당시 주목받는 신인 연기자로서 연기력과 훈훈한 외모로 드라마팬들과 소녀팬들의 인기를 한창 얻어가던 그야말로 앞날이 창창한 배우였다. [[TV는 사랑을 싣고]]의 첫번째 출연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1994년 7월 25일 밤 12시 50분경, 일일연속극 <[[한쪽 눈을 감아요]]>의 촬영을 마치고 귀가하던 도중 자가용[*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현대 스텔라 중고차를 몰고 다니다 사고 5개월 전 마련한 새차였고, 융자금 1000만원과 할부금 800만원이 남아 있었다.][* 근데 당시 기사마다 [[현대 스쿠프]] 아니면 [[기아 스포티지]]라고 각각 다르게 기재됐으며, 후술할 KBS1 <사람과 사람들>에서 부친이 폐차장을 찾을 당시의 장면에서 스포티지로 나왔다.]를 운전하다가 새벽 1시 20분경 [[올림픽대로]] 남단 부근에서 교각을 들이받고 차가 전복됐고, 사고를 목격한 승합차 운전자 및 택시기사 등에 의해 깨진 후면 유리창에서 구조된 뒤 [[서울아산병원|서울중앙병원]] 응급실로 이송되어 입원했다. 당시에는 별다른 외상이 없어 쇼크 상태인 줄 알았으나 검사 결과 뇌부종 진단을 받았고, 점차 상태가 악화되자 동월 31일 [[뇌사]] 판정을 받은 뒤 부친은 그의 장기기증을 결정했다. 결국 [[8월 1일]] 오전 8시 30분에 환자 7명에게 [[장기기증]]을 하고 세상을 떠났다.[* 심장, 신장 2개, 간, 췌장, 안구 2개] 사후 여의도 KBS 별관 내의 <남자는 외로워> 세트장에서 노제를 지낸 뒤, 유해는 화장되어 어느 산에 뿌려졌다 하며 강일동 금화사에서 49재를 치렀다. 1년 전에 [[한강 영화촬영 헬기 추락 사고]]로 사망한 [[변영훈]]과 더불어 창창한 앞날을 보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다.[* 이 때문에 당시 세간에서는 호사가들이 만들어 낸 억지 괴담이 돌았다. 무슨 억울하게 죽어 원귀가 된 배우가 연예계에서 세 명 더 잡아가느네 어쩌네... PC통신 보급 초창기이자 유언비어가 잘 돌던 시절의 단면이다. 실제로 이로부터 몇 년 전에는 [[노주현]] 사망설, [[고두심]] 사망설, [[서태지]] 임신설(서태지가 여자라는) 등의, 지금 생각하면 이걸 대체 어떻게 믿나 싶을 정도의 괴소문이 서울을 중심으로 퍼지곤 했다.] 1994년 8월 22일자 KBS1 <사람과 사람들> '석광렬이 남긴 것은...' 편에서 그에 대한 일화가 방영됐는데, 바로 아버지 석가화 씨가 다 폐차가 되어버린 그의 차량을 둘러보고 슬퍼하는 것도 나오고 외아들을 잃은 부모의 애절한 모습이 방영하던 바 있다. 사후 2재를 치를 당시 석광렬의 부모는 아들의 친구이던 배우 이리노 및 조민희와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94081400239114001&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94-08-14&officeId=00023&pageNo=14&printNo=22772&publishType=00010|양자녀 결연식을 맺기도 했다.]] 친척의 존재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생전에 배우 김일후, 이병헌, 이리노, 이창훈, 오대규 등과 친분이 있었으며, [[박용우]]가 그를 닮았다. 만약 사고 없이 살아있었으면 이병헌, 이정재보다 먼저 해외에 진출했을 가능성이 높았으며, 미중년으로도 이름을 날렸을 것이다. 게다가 당시 이병헌, 이정재에 비해 연기력도 상당히 출중[* 당장 당시 주말연속극과 일일드라마의 위상을 생각하면 알 수 있는 부분. 지금처럼 방송국이 많지 않던 시절에 주말연속극과 일일드라마의 위상은 당연히 높을 수 밖에 없는데 이제 막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연기자가 주연배우가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방송국에서도 석광렬을 높게 평가했다는 것이다.]했기 때문에 교통사고로 인한 요절이 정말 안타까운 연기자 중의 한 명이다. == 출연작 == * 드라마 * 미스터리 멜로 금요일의 여인: 강문영의 어둠 속의 미소 (1993, KBS2) - 민정훈 역 * [[남자는 외로워]] (1994, KBS2) - 권영훈 역[* 그가 교통사고로 입원한 후 극중에선 여행을 떠난 것으로 처리됨.] * [[한쪽 눈을 감아요]] (1994, KBS2) - 최기범 역[* 사고 후 극중에선 미국 유학으로 처리됨.] * 영화 * 소녀 18세 (1993) * 방송 * [[TV는 사랑을 싣고]] (1994년 5월 3일, KBS) - 첫방송 * 광고 * 세계물산(현 SG세계물산) 옴파로스 (1993) == 참고 자료 == *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4071700209121001&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4-07-17&officeId=00020&pageNo=21&printNo=22572&publishType=00010|1994년 7월 17일 동아일보 인터뷰 기사]] * [[https://blog.naver.com/daimol23/222649237628|네이버 블로거 '윈투어스타일' 포스트]] [[분류:한국 남배우]][[분류:1968년 출생]][[분류:1994년 사망]][[분류:1993년 데뷔]][[분류:자동차 사고로 죽은 인물]][[분류:양주시 출신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