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위서(북조))] [include(틀:북사)] ||<-2> '''북위의 추존 황후[br]{{{+1 宣穆皇后 | 선목황후}}}''' || || '''[[시호|{{{#fff 시호}}}]]''' ||선목황후(宣穆皇后) || || '''[[성씨|{{{#fff 성}}}]]''' ||유(劉) || || '''생몰''' ||? ~ 409년 || || '''능묘''' ||불명 || || '''부친''' ||유권(劉眷) || || '''부군''' ||[[도무제]] (道武帝) || || '''자녀''' ||1남 1녀 || [목차] [clearfix] == 개요 == [[북위]]의 추존 황후로 제2대 황제 [[명원제]] 탁발사의 모후. 흉노족 [[독고부]] 유권의 딸. == 생애 == 등국(386년 ~ 396년) 초에 탁발규가 유씨를 부인으로 들였고, 탁발규와의 사이에서 화음공주와 탁발사를 출산하였다. 유씨는 내부의 일을 전담하면서 탁발규의 총애가 더해졌으나, 금인(金人) 주조에 실패하여 끝내 황후가 되지는 못 하였다. 천사 6년(409년) 7월, 황후인 모용씨가 자식 없이 사망한지 오래라, 도무제 탁발규는 아들들 중 당시 제왕(齊王)이던 탁발사를 태자로 삼으려 하였다. 그러나 탁발부에는 후궁의 아이가 후사를 잇게 될 시 그 생모는 죽여야 한다는 자귀모사(子貴母死)의 풍습이 있었기에, 도무제는 유 귀인에게 사약을 내려 죽이고, 탁발사를 불러 타일렀다. 효성이 지극했던 탁발사는 어머니의 죽음에 슬퍼하며 정신을 차리지 못 했다고 한다. 영흥 원년(409년) 10월, 도무제를 시해한 청하왕 [[탁발소]]와 그 모친 하란씨를 죽이고 황제에 오른 명원제 탁발사는 어머니 유 귀인을 황후로 추존하고 태묘에 배향하였다. 시호는 '선목황후(宣穆皇后)'. 유씨 추존 이후로 북위의 후궁들도 모두 황제의 어머니로 인정받아 태묘에 배향되었다. 명원제가 유씨를 추존한 이후로 북위의 후궁들도 모두 황제의 모후로 인정받아 태묘에 배향되었다. [[분류:남북조시대/황후]][[분류:409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