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FFFFFF {{{+1 선우일선}}}[br]鮮于一扇}}}'''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가수 선우일선.jpg|width=100%]]}}} || ||<|2> '''출생''' ||[[1919년]] [[3월 5일]] || ||[[평안남도]] [[대동군]] 룡성면 || ||<|2> '''사망''' ||[[1990년]] (향년 70~71세)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 '''본관''' ||[[태원 선우씨]] || || '''학력''' ||평양기생학교 {{{-2 (졸업)}}} || || '''데뷔''' ||[[1934년]] '꽃을 잡고' || [목차] [clearfix] == 개요 == 일제강점기 때 활동을 시작했던 한반도의 가수. == 생애 == [[1919년]] [[3월 5일]], 평안남도 대동군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어렵게 지내다가 3년제 학교인 평양기생학교에 입학하여 [[기생]]으로 생활한다. 기생 생활 중에 소리를 잘 하는 것으로 알려져 [[1933년]]에 포리돌 레코드사의 문예부장이었던 왕평에게 발탁되었으며, [[1934년]]에 데뷔하여 가수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주로 '조선팔경가'[* 해방 후에는 노래 제목이 '대한팔경'으로 바뀌었다.], '압록강 뱃노래' 등의 민요풍의 노래를 불렀으며, [[전옥]], [[이난영]] 등과 함께 당대의 유명 여가수로 활동하였다. [[태평양 전쟁]]의 종전 후에는 이북에 머물렀으며, 이로 인해 [[남북 분단]] 이후에는 남한에서 볼 수 없게 되었다. 이북에서는 민요 관련 업무 및 교육인으로 생활하였으며, 평양음악대학의 성악학부 민족성악 교원으로 종사하면서 후학을 양성하는 일에 힘썼다. [[1990년]]에 타계하였다. [[분류:북한 여가수]][[분류:한반도의 가수]][[분류:1919년 출생]][[분류:대동군 출신 인물]][[분류:1934년 데뷔]][[분류:1990년 사망]][[분류:태원 선우씨]][[분류:기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