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1905년 출생]][[분류:평산군 출신 인물]][[분류:북한의 정치인]][[분류:남파 간첩]][[분류:1950년 사망]][[분류:6.25 전쟁/사망자]][[분류:애국렬사릉 안장자]] [[파일:late성시백_간첩_DPRK.jpg]] [목차] == 개요 == 성시백(成始伯, 1905~1950)은 [[북한]] [[황해도]] 출신 간첩이다. [[중국]]과 [[북한]]의 공산주의자다. 대한민국에서 활약한 대표적인 남파 [[간첩]]이다.[*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29403]]] 스파이 능력이 얼마나 출중했는지 [[김일성]]이 회고하기로는 노인 변장을 해서 성시백인 줄 모를 정도였다고 한다. == 생애 == [[1905년]] [[황해도]] 평산 출신으로 국내에서 공산주의 운동을 하다가 [[상하이]]로 망명, [[1932년]] [[중국공산당]]에 입당했다. 그리고 [[중국공산당]] 산하 첩보 조직의 지역 총수로 활약하는 가운데 정향명(丁向明)이라는 가명을 사용하며 [[중국국민당]] [[장제스]]의 직계로 활약하던 국민당군 장군 호종남(胡宗南) 사령관의 막료로 침투하여, 국민당 통치하의 서안지구 공산당 정보기관의 총책임자로 활동했다. 심지어 성시백이 [[조선인]]인 것 조차 주변 [[중국인]]들에게 완벽하게 숨겼다. 이런 간첩으로서의 인상적인 활약상으로 중국 총리을 지낸 [[저우언라이]]와 깊은 인연을 맺었고 이후 [[김일성]]에게 좋은(?) 인재로 소개해준다.[* 김일성이 먼저 그 명성을 먼저 알고 소개를 요청했다는 설도 있지만 구체적인 사료로서는 아직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았다.] 1935년 [[충칭시]]에서 [[조선민족혁명당]]에 입당했다. [[중일전쟁]] 발발을 전후하여 [[옌안]]으로 갔다가 다시 충칭으로 이동했다. 옌안과 충칭, 공산당의 근거지와 [[장제스]] 정부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근거지를 오가면서 활동하면서 민족혁명당[*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둘러싼 독립운동 단체들이 일본과 싸우기 위하여 통일동맹을 하여 만들어진 단체로 5당이 모여 결성]에도 개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과도 인맥을 쌓았다. [[김구]]나 김구의 심복이었던 [[엄항섭]], 한국의 초대 [[국무총리]]가 되는 [[이범석]]과도 친분이 있었고 [[대한민국 국군]] 장군으로 맹활약하는 [[김홍일(군인)|김홍일]]과는 호형호제를 하는 사이였다. 사실 여기까지만 해도, 공산당 소속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독립운동에 헌신하는 독립운동가였기는 했다. 그러다가 광복후 남북이 분단되면서 성시백은 귀환하게 되었는데 공산주의자답게 당연히 [[조선공산당]]에 입당했고,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사회부 부부장을 지내게 되었다. 물론 이 당시에도 [[남로당]]이 [[남한]] 내에서 싸움을 벌이고 있던 판이기는 했지만, 김일성은 경쟁계파인 [[박헌영]]이 장악하고 있던 남로당을 영 껄쩍지근하게 여겼고, 독자적인 정보망 구축을 위해서 당시 남한 우익인사들과 친분이 있던 성시백을 적극적으로 기용했던 것이었다. 여하튼 [[1946년]]에 임시정부에 참여했던 자신의 경력을 이용해서 정항명이라는 가명을 쓰면서 남한내 공작을 시작했고 이후로 [[1950년]] 초까지도 여러 공작을 진행해왔다가 [[1950년]] 북로당 남반부 정치위원회 사건으로 발각되었고 [[6.25 전쟁]]이 터지자 처형됐다. 전쟁통에 시신은 수습하지 못했고, [[애국렬사릉]]에 남조선혁명가 직함으로 안장된 가묘만이 북한에 남아 있다. [[대한민국]] 입장에선 위험인물이지만 북한에서는 높게 평가되는 인물이다. 아들 성세창은 [[조선사회민주당]] 참사, 성자립은 [[김일성종합대학]] 총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