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bottom, rgba(50%, 50%, 50%, 30%) 0%, transparent)" {{{+1 {{{#000000,#e5e5e5 ''' 우크라이나의 축구감독 '''}}}}}}}}} || ||<-3>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Sbornaya-Ukrainy.jpg|width=100%]]}}} || ||<-2> {{{#000000,#e5e5e5 '''이름''' }}} || {{{+1 '''세르히 코노발로프'''}}}[br]'''Serhiy Konovalov''' || ||<-2> {{{#000000,#e5e5e5 '''본명''' }}} ||세르히 보리소비치 코노발로우[br]Сергій Борисович Коновалов || ||<|2><-2> {{{#000000,#e5e5e5 '''출생''' }}} ||[[1972년]] [[3월 1일]] ([age(1972-03-01)]세) || ||[[소련]]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우크라이나SSR]] [[폴타바]] || ||<-2> {{{#000000,#e5e5e5 '''국적''' }}} ||[include(틀:국기, 국명=우크라이나)] || ||<-2> {{{#000000,#e5e5e5 '''신체''' }}} ||[[키(신체)|키]] 180cm || ||<-2> {{{#000000,#e5e5e5 '''직업''' }}} ||축구선수([[공격형 미드필더]] / ^^은퇴^^)[br][[축구 감독]] || ||<|2> {{{#000000,#e5e5e5 '''소속''' }}} || {{{#000000,#e5e5e5 '''선수''' }}} ||[[드니프로 드니프로페트로우시크]] (1990~1994)[br][[FC 디나모 키이우]] (1994~1996)[br][[포항 스틸러스]] (1996~1998)[br][[FC 디나모 키이우]] (1998~2000)[br][[드니프로 드니프로페트로우시크]] (2000~2001)[br][[FC 디나모 키이우]] (2001~2002)[br][[베이타르 예루살렘 FC|베이타르 예루살렘]] (2002~2003)[br][[FC 아르세날 키이우]] (2003)[br]보리스펜 보리스필 (2004)[br]칭다오 중넝 (2004)[br][[FC 아르세날 키이우]] (2004~2005)[br][[케슐래 FK|인테르 바쿠]] (2006) || || {{{#000000,#e5e5e5 '''감독''' }}} ||FC 세바스토폴 (2011~2013 / ^^수석코치^^)[br]FC 세바스토폴 (2013~2014 / ^^임시감독^^)[br]FC Naftovyk-우크르나프타 오흐티르카 (2015 / ^^수석코치^^)[br]FC 테르노필 (2016 / ^^수석코치^^)[br]FC 폴타바 (2017~ / ^^수석코치^^) || ||<-2> {{{#000000,#e5e5e5 '''국가대표''' }}} ||22경기 3 골^^([[우크라이나 축구 국가대표팀|우크라이나]] / 1993~2003)^^ || [목차] [clearfix] == 개요 == 구 소련과 우크라이나의 전 축구선수. 소련 시절 청소년 대표와 우크라이나의 국가대표를 지냈다. K리그 활약 당시 등록명은 '''코놀''' == [[포항 스틸러스]] == 1996년 여름 [[디나모 키이우]]에서 포항으로 이적했다. 당시 현역 우크라이나 국가대표팀 멤버였으며 자국 명문인 디나모 키이우에서 뛰던 젊고 유망한 선수였다. 당연히 몸값이 엄청났는데 이적료 60만 달러, 계약금 5만 달러, 월봉 6000달러로 수원의 [[바데아]] 다음으로 비싼 용병이었다. 하지만 영입 당시에는 시즌이 한창이었고 한국의 무더운 여름 날씨에 적응하지 못하여 잉여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에 열받은 포항 선수단도 많이 열받았는지 '''사이비 라데'''라고 불렸다. [[라데]] 또한 본인보다 실력이 떨어지는 코놀이 더 좋은 대우를 받자 포항에 섭섭해했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라데는 1996시즌을 끝으로 K리그를 떠났다. 그런데 라데가 떠난 1997시즌에는 라데의 번호였던 10번을 물려 받고 환골탈태하여 26경기 12골이라는 환상적인 퍼포먼스를 펼치면서 [[자심]], [[싼더]]와 함께 1997 포항의 든든한 기둥이 되었다. 중요한 순간마다 골을 터뜨려 포항의 [[AFC 챔피언스리그]] 2연패에 혁혁한 공을 세우기도 했다. ACL 통산 4골 기록. 1998년 다시 디나모 키이우로 복귀했다. 평가가 상당히 갈리는 선수이기도 한다. 딱 일년 반짝하고 제대로 뛰었기 때문에 [[먹튀]]라고 보는 축구팬들도 있지만 첫 시즌의 어려운 환경(우크라이나와는 완전히 다른 기후, 선수단의 조롱)을 겪고도 한국에 남아서 어느 정도 성적을 낸 것을 생각해보면 오히려 첫 시즌부터 성공했던 용병들보다도 더 대단하다고도 볼 수도 있다. == 관련 문서 == * [[외국인 선수/역대 프로축구]] [각주] [[분류:1972년 출생]][[분류:소련의 축구선수]][[분류:우크라이나의 축구선수]][[분류:우크라이나의 축구감독]][[분류:외국인 선수(축구)]][[분류:포항 스틸러스/은퇴, 이적]][[분류:FC 디나모 키이우/은퇴, 이적]][[분류:FC 드니프로/은퇴, 이적]][[분류:1991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포르투갈 참가 선수]][[분류:폴타바주 출신 인물]][[분류:1990년 데뷔]][[분류:2006년 은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