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이집트 파라오)] ---- ||<-3>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BDB76B 0%, #DECD87 20%, #DECD87 80%, #BDB76B)" {{{#A0522D '''~~이집트 파라오~~[br]{{{+1 ~~세소스트리스~~}}}[br]~~Sesostris~~'''}}}}}} || ||<-3>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Sesostris-Carving.jpg|width=100%]]}}}|| ||<-2> '''후대''' ||페론 || ||<-2> '''자녀''' ||페론♂ || [목차] [clearfix] == 개요 == 한때 이집트의 황금기를 이끌었다고 '''잘못 알려진''' 파라오. == 통치 및 정복활동 == 세소스트리스는 굉장히 넓은 영토를 가졌고 이 영토를 위해서 활발한 정복활동을 한 군주이다. [[헤로도토스]]의 기록에 따르자면은 유럽의 남쪽 일부를 포함해 [[에티오피아]]와 [[홍해]]를 낀 아라비아 반도, 아나톨리아, 시리아까지 영토를 두고 있었으며 과정에서 [[스키타이]]인들과 [[트라키아]]인들과 치열한 전쟁을 치루고 정복하였다고 일컬어진다. 이후 정복된 백성들을 파시스 강과 콜키스 강에 이주시켰다고 한다. 이 정복된 국가들에 자신의 모습을 새긴 비석을 세웠으며 그중에서 정복활동을 쉬웠던 자들은 그 옆에 적국 병사들의 모습을 새겼는데 [[내가 고자라니|남자의 양물이 없고 여성의 생식기가 대신 자리잡았으며]] 이는 병사들이 아낙네처럼 싸웠다고 폄하하는 의도가 있었다고 한다. 물론 실제 이집트 역사에서 이 광대한 영토를 가졌다고 증명할 역사적 사료는 현재로소 전무하다. 실제 파라오가 아니라 현실 고대 이집트의 전성기를 이끈 [[람세스 2세]]와 [[세누스레트 1세]]와 [[세누스레트 3세]]의 행적을 조금씩 섞어서 만든 가상의 파라오라 보는게 타당하며 고대 그리스인들의 인식에도 세누스레트 3세와 1세를 세소스트리스라 생각하였다. == 실존? == 당연하지만 실존하지 않는 파라오일 가능성이 훨씬 더 높았으며 이 정도 큰 제국을 가진 군주는 역사적으로 기록된 전례가 없었고 오직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등장하고 나서야 세소스트리스가 정복한 영토를 가진 크기의 제국이 등장하였다. 헤로도토스가 보았다는 비석의 경우 현대 튀르키예에 유물로 추정되는것이 2개 발견되었으며 각각 "Karabel A"[* 문서 상단의 이미지에 나오는 조각이다.]와 "Karabel B"로 등록되었으며 B의 경우 도로공사 때문에 심하게 파손되었으나 A는 풍화되었지만 그래도 헤로도토스의 증언과 일치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근데 1843년에 이 세소스트리스로 추정되는 인물 옆의 상형문자는 고대 이집트의 것이 아닌 [[히타이트]]의 상형문자인것으로 판명났다. 심지어 히타이트 상형문자의 해독결과 세소스트리스의 비석도 아닌 히타이트의 재상이었던 타카스나와의 것으로 판명되었다. 세소스트리스의 등장도 딱 절묘하게 고대 그리스 시대인것과 연관이 있는데 애초에 세소스트리스도 세누스레트의 그리스어 번역이다. 자녀로 알려진 후대의 파라오 '페론'도 실제로는 '파라오'라는 군주를 일컫는 명칭을 헤로도토스가 고유명사 및 이름으로 착각한 해프닝으로 보기도 한다. 당시 헤로도토스가 살던 당시의 고대 이집트는 [[페르시아 제국]]에 의해 통치받고 있었는데 지배층이 이집트인들이 아니라 페르시아인이라는 반발감과 이로 인해 빈번하게 반란이 일어났었는데 이 이집트 백성들의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탄생한게 세소스트리스로 보인다. 즉 실제로는 프로파간다적 인물인것. 잘 보면은 당시 페르시아 제국의 영토와 어느정도 겹치는 부분이 많으며 유일하게 다른 부분은 홍해를 포함한 아라비아 반도와 에티오피아 뿐이다. 이 프로파간다가 잘 먹혀들어서인지 후대의 역사가인 [[디오도로스 시켈로스]]의 기록에 따르면은 당시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세상의 끝으로 인식되었던 [[인도]]까지 정복하였다는 첨언도 달려있었다고 한다. == 여담 == 고대 그리스와 중동에서는 이상적인 군주의 표본으로 알려졌는데 특히 [[알렉산드로스 3세]]가 존경한 인물이었으며 그가 학자우대를 한것도 세소스트리스가 피지배민들을 콜키스강에 이주시킨 이야기에 영향받은 측면이 있는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힘만 강한게 아닌 이성적이었으며 전쟁 후 수습까지 해내는 먼치킨이었던것. 기원후 300년대에 저술된 중세 역사서 '알렉산더 로망스'에도 등장한다. 여기에는 '세손코시스'(Sesonchosis)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며 알렉산더 본인과 만나는 것으로 나온다.[* 역사서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후대에 지어진 가상의 이야기일것이며 이는 중세에 흔한 풍습이었다. 원래는 [[랜슬롯]]과 [[트리스탄]]도 원탁의 기사가 아니라 각각 별개의 전설에 나오는 인물이었던것이 예시.] 내용은 대략 '내가 한때 세상을 다스린 군주였으나 이제는 내 이름은 유명세를 잃었다. 너는 신들이 총애하는 이집트에서 발견되었으니 이름이 널리 퍼질것이다,'라는 알렉산더에 대한 축복 겸 [[오지만디아스(시)|자신에 대한 애한이다.]] [[분류:파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