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개요 == {{{+1 少林棍法闡宗}}} [[소림사]]에서 전해지는 곤법으로 소림 심의파, [[소림72예]]와 더불어 소림사 본연의 것이라고 불리는 무술이다. == 역사 == 명나라 만력 44년(1616) 정충두(程沖斗)[* 생몰년 1561-?. 현재의 안휘성 휴녕현(休宁县) 출신. 자가 종유(宗猷) 또는 백가(伯嘉)라 하므로 '정종유'라고도 쓰기도 한다.]가 정리한 책 <소림곤법천종>에 따르면 당시 소림곤법은 다음과 같은 형과 법으로 되어 있었다. 소야차(小夜叉) 6로, 대야차(大夜叉) 6로, 음수(陰手) 6로, 배곤(排棍) 3로 무정세, 천사(穿梭) 1로 무정세 모원의는 무비지(武備志)에서 곤법 가운데서도 소림 곤법이 으뜸이라고 밝혔는데, 이 소림곤법은 또 소림사에서 발생했다고는 보지 않는다. 그에 대해서 곤법의 달인이며 왜구를 상대로 혁혁한 무공을 세운 바 있는 무장이기도 했던 유대유(兪大猷, 1503-79)는 저서 <정기당집(正氣堂集)>에서 자신이 본 소림의 곤법은 이미 옛 사람의 진수를 모두 잃은지라 그것에 대해서 일일이 지적해주고 자신이 가르쳤다고 하고 있다. 소림사에서는 가르침을 받기 위해 젊고 힘이 좋은 종경과 보종이라는 두 승려를 추천했고 유대유는 이들을 약 3년간 가르쳤다. 그리고 종경과 보종은 소림으로 돌아가 곤법을 가르치는데 힘썼는데 13년 후 종경이 돌아와 그 가르침을 잘 전하고 있다며 보고했다. 물론 그렇다고 [[소림사]]도 공휴일은 아니라서 소림의 곤법이 유대유의 기술과 아주 같진 않았다는 말도 있다. 소림곤법천종을 저술한 정충두는 자신의 곤법을 당시 소림에서도 곤법으로 이름이 높던 홍전에게서 배웠다고 하는데, 홍전(洪轉)이 저술한 책이 <몽록당창법(夢綠堂槍法)>이다. 뜬금없는 웬 창법이냐고 하겠지만 수비록을 참고하면 당시 소림에서는 곤법을 창법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는 또 유대유가 전한 것과는 상당히 다르다는 말. 어쨌든 유대유에게 배운 뒤로는 꾸준히 소림사의 곤법은 계승되니 [[소림사]] 본연의 곤법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분류:격투기 무술]][[분류:무공/무기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