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초나라의 영윤]][[분류:춘추전국시대의 공족]] [include(틀:초(춘추전국시대)의 영윤)] [include(틀:초나라의 왕족)] |||||| {{{#ece5b6 '''{{{+1 소양[br]昭陽}}}'''}}} || |||| '''[[직위|{{{#ece5b6 최종직위}}}]]''' || 영윤(令尹) || |||| '''[[성씨|{{{#ece5b6 성}}}]]''' || 미(羋) || |||| '''[[본관|{{{#ece5b6 씨}}}]]''' || 소(昭) || |||| '''[[이름|{{{#ece5b6 명}}}]]''' || 양(陽) || |||| '''{{{#ece5b6 아버지}}}''' || [[소해휼]](昭奚恤) || || '''{{{#ece5b6 생몰 기간}}}''' || 음력 || 기원전 ???년 ~기원전 ???년 || [목차] [clearfix] == 개요 == [[춘추시대]] [[초(춘추전국시대)|초(楚)나라]]의 왕족. [[초회왕|회왕]] 시기의 [[영윤]]이다. 초나라의 거족 소(昭)씨 사람이며 고사 [[호가호위]]로 유명한 [[소해휼]]의 아들이다. == 기록 == === 《전국책》〈제책〉 115.靖郭君善齊貌辨 === >제모변이 선왕을 뵙자 왕이 말하였다.[br]“그대는 정곽군[* [[맹상군]]의 아버지 전영(田嬰)이다.]이 무엇이든지 들어주는 아끼는 인물이라던데!”[br]제모변이 말하였다.[br]“저를 사랑하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들어주는 것은 아닙니다.[br]대왕께서 태자가 되셨을 때 제가 정곽군에게 '태자의 관상이 어질지 못합니다. 턱이 너무 크고 돼지눈처럼 보이니, 이런 얼굴은 신의를 배반합니다. 태자를 폐위시키고 다시 위희(衛姬)의 어린 아들 郊師[* [[제위왕|위왕]]과 위희 사이에 난 왕자. [[제선왕|선왕]]의 이복동생.]를 세우니만 못합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br]그러자 정곽군께서는 울면서 '안 되오. 나는 차마 그렇게는 못하오'라고 하였습니다.[br]만약 제 말을 듣고 그렇게 했다면 오늘날 같은 환난은 틀림없이 없었을 것입니다.[br]이것이 그 하나의 예입니다.[br]또 설(薛) 땅에 이르자 초나라 '''소양(昭陽)'''이 몇 배의 땅으로 설 땅과 바꾸자는 제의를 해왔습니다.[br]저는 그때 '그 제의를 반드시 받아들이십시오'라고 하였습니다.[br]그러자 정곽군께서 '설 땅은 선왕(先王)으로부터 받은 것인데, 비록 후왕(後王)이 나를 미워한다고 해도 그렇게 하면 장차 선왕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소![br]게다가 선왕의 사당이 바로 이곳 설(薛)에 있는데[* 제 위왕 때부터 사당을 설(薛) 땅에 세웠다.] 내 어찌 선왕의 사당을 초나라에 넘겨 줄 수 있겠소!'라고 하면서 또다시 저의 의견을 듣지 않으셨습니다.[br]이것이 그 두 번째 예입니다.”[br][br]{{{-2 본 자료의 원문 및 번역은 전통문화연구회의 동양고전종합DB(http://db.juntong.or.kr)에서 인용된 내용입니다.}}} === 《전국책》〈제책〉 131.昭陽爲楚伐魏 === >{{{+1 昭陽이 楚를 위하여 魏를 치다}}}[br][br]昭陽이 楚나라를 위하여 魏나라를 쳐[* 기원전 323년의 일. [[초회왕|초 회왕]]이 소양을 시켜 위나라의 양릉(襄陵)을 공격하여 8개의 읍(邑)을 취하였다.] 그 군대를 뒤엎고 장수를 죽여 8개 城을 얻고는 군대를 옮겨 齊나라를 공격하였다.[br]그러자 陳軫이 齊王의 使者가 되어 소양을 만나 재배하며 戰勝을 축하하고는 일어나 물었다.[br]“초나라의 법으로는 이렇게 破軍殺將의 큰 승리일 경우 어떤 官爵을 줍니까?”[br]소양이 말하였다.[br]“官은 上柱國을 주고, 爵은 上執珪가 됩니다.”[br]진진이 말하였다.[br]“그보다 더 높은 것은 무엇입니까?”[br]소양이 말하였다.[br]“오직 令尹이 있을 뿐이오.”[br]진진이 말하였다.[br]“영윤은 아주 귀한 자리이군요.[br]왕께서 두 명의 영윤을 둘 수 없을 것이니, 제가 그대를 위해 비유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楚나라에 어떤 제사를 지낸 사람이 그 舍人들에게 술 한 병을 내려 주자, 사인들이 서로 의논하기를 ‘여럿이 마시면 부족하고 혼자 마시면 남을 것이니, 청하건대 땅에 뱀을 그려 먼저 완성하는 자가 마시기로 하자’라고 하였습니다.[br]그 중 어떤 사람이 뱀을 먼저 그리고는, 술잔을 끌어당겨 마시려다가 왼손으로 술잔을 들고 오른손으로 뱀을 그리면서 ‘나는 뱀의 다리까지도 그릴 수가 있다’라고 하였습니다.[br]아직 다리를 다 그리지 못하였을 때, 그 다음 한 사람이 뱀을 다 그리고는 술잔을 빼앗으면서 ‘뱀은 본래 다리가 없다. 그대는 어찌 발까지 그렸는가?’하고는 마침내 그 술을 마셔 버려 결국 蛇足을 그린 자는 그 술을 마시지 못하고 말았습니다.[br]지금 그대가 초나라의 재상으로서 위나라를 공격하여 破軍殺將하여 8개 성을 빼앗았습니다. 그렇게 하고도 그 병력이 약해지지도 않았으며, 제나라를 치고자 하여 제나라가 그대를 매우 두려워하고 있으니, 공께서는 이 정도로 만족하게 여기셔야 하며, 더 이상 올라갈 관직도 없습니다. 이기지 못하는 싸움이 없으면서 그칠 줄 모르는 자는 몸은 죽고 관직도 뒷사람에게 빼앗기는 법이니, 이게 바로 蛇足을 그린 자와 같은 것입니다.”[br]昭陽은 그렇게 여겨 군대를 풀고 철수해 버렸다.[br][br]{{{-2 본 자료의 원문 및 번역은 전통문화연구회의 동양고전종합DB(http://db.juntong.or.kr)에서 인용된 내용입니다.}}} === 《전국책》〈초책〉 171.五國約以伐齊 === >{{{+1 五國이 맹약하여 齊나라를 치다}}}[* 악의가 제나라를 공격한 사건][br][br]五國(燕‧趙‧魏‧韓‧秦)이 맹약하여 齊나라를 쳤다.[br]이때 昭陽이 楚王(頃襄王)에게 말하였다.[br]“다섯 나라가 제나라를 격파한 다음에는 반드시 남쪽으로 우리 초나라를 공격할 것입니다.”[br]왕이 물었다.[br]“그러면 어찌해야겠소?”[br]소양이 대답하였다.[br]“韓나라는 輔國[* 주모국이 아니고 추종하는 나라. 이때 제나라를 친 주모국은 燕나라임.]이어서 이익만 좋아하고 힘든 전쟁은 싫어합니다.[br]이익을 좋아하니 이익으로 유혹할 수 있으며, 전쟁을 싫어하니 위협할 수 있습니다.[br]우리가 후한 뇌물을 갖다 주어 이롭게 하면 유혹되게 할 수 있고, 우리가 병력을 모아 접근하면 틀림없이 우리를 두려워할 것입니다.[br]저들이 우리 병력을 두려워하고 우리의 후한 이익의 유혹에 넘어가면 다섯 나라의 일은 반드시 깨어질 것입니다.[br]그 맹약이 깨어진 후에는 韓나라에게 약속한 땅을 주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br]초왕이 말하였다.[br]“좋다.”[br]그리고는 大公事를 명하여 韓나라에 보냈다.[br]그는 [[공중치]](公仲侈)[* 韓나라의 재상.]를 만나 이렇게 말하였다.[br]“무릇 지난번 牛闌의 전쟁과 [[마릉 전투|馬陵의 싸움]]은 귀국 대왕께서 직접 보신 바입니다.[br]귀국 대왕이 진실로 五國의 起兵에 가담하지 않는다면 청컨대 5개 城을 드리겠습니다.[br]그리고 우리 초나라 군사를 다 모아 齊나라를 공격하겠습니다.”[br]이렇게 하여 제나라가 趙나라와 魏나라를 배반한 뒤에 초나라는 과연 한나라에게 땅을 주지 않았다.[br]그리하여 다섯 나라의 동맹은 곤경에 빠지고 말았다.[br][br]{{{-2 본 자료의 원문 및 번역은 전통문화연구회의 동양고전종합DB(http://db.juntong.or.kr)에서 인용된 내용입니다.}}} === 《전국책》〈초책〉 205.五國伐秦 === >{{{+1 다섯 나라가 秦나라를 치다}}}[br][br]다섯 나라[* 초楚‧한韓‧위魏‧조趙‧연燕의 다섯 나라. 《사기》 〈육국연표〉에 의하면 이 다섯 나라가 B.C.318년에 함께 진나라를 공격하였으나 이기지 못하였다.]가 진나라를 침벌하였는데, 위나라는 강화를 하고 싶었다.[br]그래서 위나라가 [[혜시]]를 초나라에 보내자 초나라는 혜시를 다시 진나라로 보내어 강화를 주선하도록 하였다.[br]초나라 두혁(杜赫)이 '''소양(昭陽)'''에게 말하였다.[br]“무릇 진나라를 치는 나라는 초나라입니다.[br]지금 혜시가 위나라로부터 우리에게 왔는데 公께서 이를 다시 진나라로 보내는 것은, 초나라가 진나라를 치고 있음을 밝혀 줌과 동시에 위나라가 강화하려고 한 사실을 믿게 하는 것이 됩니다.[br]그러니 공께서는 혜시의 말을 듣지 말고 몰래 사람을 보내 진나라와 강화하느니만 못합니다.”[br]'''소양'''이 말하였다.[br]“좋소.”[br]그리고는 혜시에게 말하였다.[br]“무릇 진나라를 공격하는 자는 위나라입니다.[br]지금 그대가 우리 초나라를 통해서 진나라와 강화를 하게 되면, 초나라는 그 이득을 보게 되지만 위나라는 원망을 듣게 됩니다.[br]그대는 돌아가시오.[br]내가 장차 사람을 보내어 위나라를 통해 강화하겠소.”[br]혜시가 귀국하자 위왕[* [[위양왕]]. 일설에는 위애왕이라고도 한다.]이 기뻐하지 않았다.[br]그러자 두혁이 '''소양'''에게 말하였다.[br]“위나라가 그대를 위해서 먼저 싸움을 시작해서 군사를 반이나 잃고 초나라에 곤란을 호소하는 데도 들어주지 않고, 강화를 청하여도 성립시켜 주지 않다가 위나라가 입장을 바꾸어 齊나라와 秦나라와 연합하면 그대는 어떻게 구하겠습니까?[br]우리는 동으로 아직 월나라의 괴롭힘[* 이때 월나라는 초나라에 망한 지 10년이 넘었으나 그 후예들이 옛 월나라 땅에서 부흥운동을 일으켰다.]이 있고, 북으로는 [[삼진(전국시대)|삼진]](三晉)의 원조도 없으며 제나라나 진나라와의 외교도 확정되어 있지 않아 우리 초나라만 고립되게 되니, 화해를 서두르는 것만 못합니다.”[br]소양이 말하였다.[br]“좋소.”[br]그리고는 즉시 사람을 위나라에 보내어 진나라와 강화한 일을 고하였다.[br][br]{{{-2 본 자료의 원문 및 번역은 전통문화연구회의 동양고전종합DB(http://db.juntong.or.kr)에서 인용된 내용입니다.}}} === 《전국책》〈한책〉 400.襄陵之役 === >{{{+1 양릉(襄陵)의 싸움}}}[br][br]양릉의 싸움에서 畢長이 公叔에게 말하였다.[br]“무력을 쓰지 않으면 초나라‧위나라가 모두 공의 나라를 고맙게 생각할 것입니다.[br]무릇 초나라에서는 위나라 공자 고[* 초나라에서 위나라의 [[위양왕|태자 사(嗣)]]를 폐하고 자신과 가까운 太子 高(咎)를 세울 것을 요구하였다.]를 태자로 세우려고, 틀림없이 위나라로 쳐들어갈 것입니다.[br]이때 공께서는 어찌 사람을 시켜 '''소양(昭陽)'''에게 ‘전쟁에 틀림없이 이기지 못하리라고 판단되면 그대를 위해 내가 군대를 일으켜 위나라로 출병할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습니까.[br]이는 그대가 싸우지 말도록 말하는 것으로 그렇게 되면 태자와 '''소양''', 그리고 梁王[* 魏나라의 별칭이 梁이다.] 모두 그대를 고맙게 여길 것입니다.”[br][br]{{{-2 본 자료의 원문 및 번역은 전통문화연구회의 동양고전종합DB(http://db.juntong.or.kr)에서 인용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