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양서)] ||<-2> '''{{{#ece5b6 계양돈왕(桂陽敦王)[br]{{{+1 蕭淵象 | 소연상}}}}}}''' || || '''{{{#fff 작호}}}''' ||<(> 계양군왕(桂陽郡王) || || '''{{{#fff 시호}}}''' ||<(> 돈(敦) || || '''{{{#fff 성}}}''' ||<(> 소(蕭) || || '''{{{#fff 이름}}}''' ||<(> 연상(淵象) || || '''{{{#fff 자}}}''' ||<(> 세익(世翼) || || '''{{{#fff 친부}}}''' ||<(> [[소의]](蕭懿) || || '''{{{#fff 양부}}}''' ||<(> 소융(蕭融) || || '''{{{#fff 출생}}}''' ||<(> ? ~ 536년 || [목차] [clearfix] == 개요 == [[남북조시대]] [[양(남조)|양나라]]의 종실로 자는 세익(世翼). [[당나라]] 시기에 편찬된 [[양서(역사책)|양서]]와 [[남사]]에서는 [[고조(당)|고조 이연]]의 이름을 피휘하여 소상으로 나온다. == 생애 == 본래 장사선무왕(長沙宣武王) [[소의]](蕭懿)의 아들이었다. 하지만 계양간왕(桂陽簡王) 소융(蕭融)이 영원 연간에 살해당했는데, 소융에게 아들이 없어서 소연상을 후사로 삼았다. 소연상은 몸가짐이 고상하였고 교유를 잘하였으며 생모를 모셔 효행으로 알려졌다. 처음에 영원장군(寧遠將軍), 단양윤(丹陽尹)으로 부임했는데 부임한지 얼마 안되어 양모가 죽자 관직에서 물러났다. 양모의 상을 마친 뒤에 다시 명위장군(明威將軍), 단양윤으로 제수되었다. 소연상은 장락궁에서 태어나 정치를 펼치면서 실정이 없었기에 조정으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또한 지절(持節), 도독사곽영3주제군사(都督司霍郢三州諸軍事), 정원장군(征遠將軍), 영주 자사로 전출되었다가 이윽고 도독상형2주제군사(都督湘衡二州諸軍事), 경거장군(輕車將軍), 상주 자사로 옮겼다. 소연상은 중서시랑(中書侍郎)으로 제수되어 석두수군사(石頭戍軍事)를 겸하였으며, 급사황문시랑(給事黃門侍郎) 겸 영군장군(領軍將軍)으로 전임되고 또한 종정경(宗正卿)을 겸하였다. 이윽고 시중(侍中), 태자첨사(太子詹事)로 임명되었지만 받지 않았고, 지절, 도독강주제군사(都督江州諸軍事), 신무장군(信武將軍), 강주 자사로 전임되었다가 병으로 인해 면직되었다. 이윽고 태상경(太常卿)으로 제수되고 시중이 더해졌으며 비서감(秘書監) 겸 보병교위(步兵校尉)로 옮겼다. 소상은 536년에 사망하여 돈(敦)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분류:양(남조)/인물]][[분류:536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