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제3대 국회의원/전라남도)] * [[정치인/목록]] [[분류:1913년 출생]][[분류:1963년 사망]] [[파일:external/tv.pstatic.net/yonhapnews_33631281.jpg|width=150]] 孫文璟 1913년 2월 8일 ~ 1963년 1월 17일 [[대한민국]]의 전 [[서예]]가, [[정치인]]이다. 호는 구암(龜巖)이다. 1913년 [[전라남도]] 흥양군 도양면 도덕리(현 [[고흥군]] 도덕면 도덕리)에서 태어났다. [[전라북도]] [[익산시|익산군]] 이리공립농림학교(현 [[전북대학교]] [[전북대학교/캠퍼스|익산캠퍼스]]), [[일본]] [[메이지대학]]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한편 어릴 때부터 서예가, 신동으로 소문이 나서 고흥군 금탑사 현판, 쌍충사 현판 등을 썼다고 한다. [[8.15 광복]] 후인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제헌 국회가 개원하자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서 서무과장으로 근무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박팔봉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5년 4월23일 제20회 정기국회 제34차 본회의에서는 [[http://www.namdo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2305|국보급 유물의 해외전시 안건을 제안하여]] [[대한민국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9년 [[대한민국 국회]] 사회보건위원회(현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한편 [[국회의원]] 재임 중 고흥군 도양면(현 도양[[읍(행정구역)|읍]])의 쌍충사, [[강진군]] 다산 [[정약용]] 유배지, [[남원시|남원군]] [[광한루]] 춘향영전 복원 등에 역량을 모았다. 그리고 [[국전(동음이의어)|국전]]에 출품한 작품이 특선에 당선된 적이 있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전라남도 [[대한민국 참의원|참의원]]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1961년 [[3.15 부정선거]] 가담을 이유로 반민주행위자공민권제한법에 의해 공민권이 제한되었다. [[분류:제3대 국회의원]][[분류:제4대 국회의원]][[분류:자유당 국회의원]][[분류:고흥군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서예가]][[분류:전북대학교 출신]][[분류:메이지대학 출신]][[분류:밀양 손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