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티베트의 군주]] ||<-5><:><#94153E> [[토번|[[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280px-Tibetan_snow_leopard.svg.png|width=100]]]] [br] '''{{{+1 [[토번국|{{{#ffffff 토번 제국의 역대 찬보}}}]]}}}''' || ||<:> 32대 남리송첸 ||<:> {{{+1 ←}}} ||<:><#94153E> '''{{{#ffffff 33대 송첸캄포}}}''' ||<:> {{{+1 →}}} ||<:> 34대 망송망첸 || |||| [[파일:송찬간포.jpg]] || || '''[[시호]]''' ||<(> 간포(干布, 찬보) || || '''[[휘]]''' ||<(> 송찬(松贊) || || '''생몰년도''' ||<(> 605년 ~ 649년(추정) || || '''재위기간''' ||<(> 617년 ~ 649년(추정) || [[티베트어]]: སྲོང་བཙན་སྒམ་པོ་(Songzän Gambo) [[표준 중국어]]: 松赞干布(Sōngzàn Gānbù) [[영어]]: Songtsen Gampo [[한국어]] : 송첸캄포[* [[동아시아사]] 표기], 송짼감포[* [[두산백과]] 표기], 손챈감포[* [[한국어 위키백과]] 표기], 송첸감포, 송찬간포 등 획일화 되지 않음. 『[[신당서]]』 - 「토번전」의 [[가차]] 표기: 棄宗弄讚 == 개요 == [[토번]]의 33대 왕이자 여러 왕국으로 분열되어 있었던 토번을 통일하였으며 실질적으로 티베트 왕조를 건국한 시조로 평가받는 명군. 재위기간은 605년 - 649년으로 추정 == 생애 == === 즉위 === 야룽왕조의 32대 찬보인 남리 송첸[* 손첸 감포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으나 출처 확인 필요]이 중앙집권화에 실패하여 토번 귀족들에게 암살당한 후 불과 13세의 어린나이로 33대 찬보로 즉위하였다. 전대 찬보였던 자가 독살됨으로서 어린나이에 즉위하였기 때문에 그는 나약하기 짝이없는 힘없는 군주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 업적 === 분열되었던 토번왕국들을 하나로 묶어서 전국을 6대 행정구로 개편해 통일 왕조를 세웠으며 이미 발전되어 있던 당나라로부터 선진 기술을 받아들여 토번의 농업과 목축업을 발전시켰다. 이후 [[라싸]]를 제국의 수도로 하여 토번의 영역을 적극적으로 확대하였으며 [[티베트 문자]]를 만들기 위해 인도에 특사단을 파견하였다. 이후 토번은 그 덕분에 토번의 문학과 번역, 그리고 법률 기록이 가능해졌다 당서에 의하면 인도에서 침략한 군대를 당나라와 함께 몰아낸 후 수많은 비단을 하사받기도 하였으며 이후 당나라에 요청하여 누에와 회반죽, 술을 만드는 기구, 종이와 먹을 만드는 장인들을 통해 기술을 전파받았다고도 되어 있다. 이후 토번의 국력이 강성해지자 서쪽의 사막으로 이어진 [[실크로드]]와 서촉 지방을 공격하여 서역과 당나라의 직접적인 교류를 방해하며 당나라를 압박했고, 이후 634년경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당 황실의 공주를 왕비로 맞이하겠다며 통혼을 요청하였으나 당나라에서 이를 묵살하자 대군을 파견해 당나라의 속국이였던 [[토욕혼]]을 함락시킨 후 당나라의 국경지대인 송주를 공격한다. 이에 [[당태종]]은 [[후군집]]을 보내어 이를 격파하였고 다시 토번이 통혼을 요청하자 [[문성공주]]를 토번에 시집보낸다. 이후 당나라는 서역교역로의 패권을 두고 기나긴 세월 동안 토번과의 화친과 전쟁을 반복하게 된다. == 여담 == 문성공주와 맺어진 것으로 유명한데 본래부터 문성공주는 손첸감포의 [[왕비]]가 아니라, 그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쿵손쿵첸(621-643)의 왕비가 될 예정이였다. 그런데 혼인 후 3년이 못 되어 쿵손쿵젠왕이 급사하자, 토번 유목민의 습관을 따라 다시 왕위에 오른 그의 시아버지 손첸감포의 왕비가 되었던 것 문성공주가 토번으로 시집을 오면서 결혼 예물로서 금으로 칠한 석가모니 [[불상]]을 가져왔으며 이후 [[네팔]]의 츠존 공주도 아축불과 미륵불상을 가져왔다. 특히 문성공주는 당나라의 [[불경]]들과 당의 선진적인 [[천문학]], [[풍수지리]], [[의학]], [[신학]] 등 18종의 [[과학]] 서적들도 같이 가지고 들어왔다. 이후 그녀는 왕비로서 당나라에 존재하던 풍수지리 사상을 근거로 로 터를 잡아 대규모 사찰을 짓고, 암벽에 경문과 불상을 암각하고, 대형 탑과 불상을 수없이 조성하여 토번에 불교 미술을 전파, 확산시켰다. 이후 티베트 사람들은 그 업적을 기려 문성공주를 ‘바다의 연꽃(쵸패마)’이라 부르며, 타라의 화신으로 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