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송나라의 군주]][[분류:기원전 576년 사망]] [include(틀:역대 송(춘추시대) 군주)] |||||| '''{{{#ece5b6 송(宋)나라 25대 국군[br]{{{+1 공공}}}[br]共公}}}''' |||||||||| |||| '''[[성씨|{{{#ece5b6 성}}}]]''' |||| 자(子) || |||| '''[[본관|{{{#ece5b6 씨}}}]]''' |||| 송(宋) || |||| '''[[휘|{{{#ece5b6 휘}}}]]''' || 하(瑕) || |||| '''{{{#ece5b6 아버지}}}''' |||| [[송문공]](宋文公) 자포(子鮑) || || '''{{{#ece5b6 생몰 기간}}}''' || 음력 || 기원전 ???년 ~ 기원전 576년 || || '''{{{#ece5b6 재위 기간}}}''' || 음력 || 기원전 588년 ~ 기원전 576년 || [목차] [clearfix] == 개요 == [[중국]] [[춘추시대]] [[송(춘추전국시대)|송나라]]의 제 25대 [[군주]]. [[송문공]]의 아들. [[송평공]]의 아버지. 달리 송 공공(宋恭公)이라고도 한다. == 생애 == 송 공공이 즉위한 뒤 수해를 피하고자 도읍을 상구에서 상성으로 옮겼다. 이 당시 화원(華元)이 정권을 장악했다. 송 공공 10년(기원전 579년), 송나라 대부 화원이 [[초(춘추전국시대)|초(楚)나라]] 장수 자중, [[진(춘추오패)|진(晉)나라]] 장수인 난서(欒書)와 친했다. 그래서 진(晉)나라와 초나라의 화해를 주도했다. 이것이 [[미병지맹]](弭兵之盟)이다.[* 그 후에도 진행되었다. 즉 이것이 1차 회맹이다.] 송 공공 13년(기원전 576년), 송 공공이 죽고 사마 탕택이 반란을 일으켰다. 태자인 자비(子肥)를 죽이고 실권자인 화원도 죽이려했다. 그러나 화원은 진(晉)나라로 망명하려고 하는데, 어석의 말을 듣고 힘을 모아 역공해 탕택을 죽이니 탕택의 일족은 초나라로 도망갔다. 화원은 송 공공의 작은 아들인 자성을 세우니 그가 바로 송 평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