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송면수.jpg|width=300]] [목차] [clearfix] == 개요 ==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대한민국 초대 육군 정훈국장. [[1992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 생애 == 1910년 3월 14일 강원도 회양군 출생. 전쟁기념관 전사자명부에는 강원도 주문진 출생으로 기록하였다. 1930년 중국 상해로 망명하였고, 1937년 [[중산대학]] 법학원 경제학과를 졸업하였다. 1938년 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서 활동하였고, 1940년 [[대만 군관학교|중국중앙육군군관학교]]에 들어가 1943년 졸업하였다. 1942년 [[광복군]] 제2지대 정훈조장으로 활동하는 등 [[정훈교육|정치훈련]]분야에서 활약하였다. 1943년 [[한국독립당]] 중앙집행위원회 상무위원 겸 선전부 주임, 1944년 [[대한민국임시정부]] 문화부, 선전부 편집위원을 역임하였다. 1944년 [[엄항섭]], [[안병무(1912)|안병무]], 박영만, 안우생과 주중 미대사관에서 조직한 한국인 공작반에서 활동하며 OSS와의 연합작전에 공을 세웠고 광복군 국내정진군 황해도반장으로 OSS에서 군사훈련을 받았다. 해방 후, [[이범석]]장군 휘하 [[조선민족청년단]]에서 선전부장 및 이사를 맡았고, 중앙훈련소 부소장을 지냈다. [[1948년]] [[11월]] [[군무원|문관]] 신분으로 초대 국방부 정훈국장, 육군 정훈감을 역임했다. [[1949년]] 3월 정공전법(초안)을 작성해 창군기 [[정훈교육|정훈]]의 방향을 제시하였다. 10월 16일 국방부 정훈국 개편 및 육해공 정훈감실 폐지로 사임했다. [[6.25 전쟁]] 당시 [[대한민국 육군]] 중령으로 복무하다 사망하였으며, 독립유공자 공훈록 및 전사자명부에서는 [[1950년]] [[8월 10일]]사망(혹은 전사) 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64081500239105005&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64-08-15&officeId=00023&pageNo=5&printNo=13322&publishType=00010|1964년 8월 15일자 조선일보 기사]]에서는 6.25 동란 중 피랍 되었고, 6.25전쟁납북자협의회 [[http://www.kwafu.org/korean/directory.php|납북인사DB]]에서는 [[http://www.kwafu.org/korean/directory_read.php?num=3872|7월 23일 납북]] 된 것으로 기록하였다. == 여담 ==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인 김붕준의 사위이다. 아내 김효숙은 중경임시정부 당시 애국부인회 부회장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아내 김효숙 여사는 송면수 지사 사후 1963년 부터 원호법에 의해 교통부 도서관에서 근무하다 가족들과 미국으로 이민하였고, 2003년 별세하였다. [[2021년]] [[김원웅]] 전 [[광복회|광복회장]]의 정치편향적 발언 및 독선행위를 항의한 광복회원 김임용이 외조카이다. == 참고자료 == 독립유공자 공훈록[[https://e-gonghun.mpva.go.kr/user/ContribuMeritList.do?goTocode=20002|#]] 전쟁기념관 전사자 정보 검색[[https://www.warmemo.or.kr/front/militaryInfo/warDeadView.do|#]] 김지훈, 「창군기 한국군 정훈의 기획」, 『2017년 20차 군사사 연구논문 발표회』,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2017년 9월 26일, 48쪽 [[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한국광복군/군인]][[분류:1910년 출생]][[분류:1950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국장]][[분류:중산대학 출신]][[분류:대한민국의 군인]][[분류:6.25 전쟁/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