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수단 공화국의 대외관계)] [include(틀:남수단의 대외관계)] || [[파일:수단 공화국 국기.svg|width=100%]] || [[파일:남수단 국기.svg|width=100%]] || || [[수단 공화국|{{{#fff '''수단'''}}}]] || [[남수단|{{{#FCDD09 '''남수단'''}}}]] || [목차] [clearfix] == 개요 == [[수단 공화국|수단]]과 [[남수단]]의 관계에 대한 문서다. 양국은 [[아프리카 연합]] 회원국이지만, 역사적인 이유로 갈등이 존재했다. 양국은 영국의 지배와 영향으로 [[영어]]도 사용되고 있다. 영토분쟁이 존재한다. == 역사적 관계 == 수단과 남수단은 고대부터 [[나일사하라어족]] 민족들이 거주하던 지역이었다. 그러나 지리적, 역사적인 이유로 양 지역의 문화와 역사, 사회는 큰 차이가 벌어지게 되는데 건조지대이면서 동시에 북부의 이집트와 인접한 북수단은 이집트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게 된 반면, 열대 우림 지대에다가 해안과도 떨어져 있던 남수단 지대의 경우 외부와의 교류가 제한될 수 밖에 없었다. 북수단의 주요 주민 [[누비아인]]들은 [[나일사하라어족]]에 속하는 민족 집단이었으나 수천여 년간 [[이집트인]], [[아랍인]]들과 교류한 결과 오늘날 인구 대다수가 아랍어를 사용하는 등 아랍화되었으며, 반면 남수단의 [[딩카족]]과 [[누에르족]]들은 북수단의 아랍화/이슬람화된 누비아인이나 [[바까라족]] 등과는 차별화된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다. === 전근대 === 수단은 상이집트와 맞닿아있는 이유로 고대부터 찬란한 역사를 자랑하던 지역이었다. [[청동기 시대]] 찬란한 문명을 자랑했던 [[쿠시 왕국]]이 대표적이다. 수단 북부의 누비아인들은 이집트와의 교류의 영향으로 언어적으로 아랍어를 사용하고 아랍화된 반면, 아랍인 상인들이 침투하기 어려웠던 남수단 열대 사바니 지대 일대에는, [[나일사하라어족]] 유목민들이 전통적인 방식대로 소를 치며 유목 생활을 영위하는 상황이 지속되었다. 전통적으로 이들은 반농반목 사회를 유지하며 유목을 하지만 기마 유목민은 아니다. 기마 유목민들이 양을 주로 키워 고기와 젖을 먹는 데 반해 나일사하라어족 유목민들은 소를 주로 키우며 소를 죽여 고기를 얻는 대신 소를 죽이지 않고 상처를 내 피를 마시며, 우유도 많이 마신다. 소가 재산과 권위의 상징이기 때문에 소고기에 대한 터부가 남아있으며, 육류는 대부분 사냥으로 마련한다. 아랍인 노예 상인들이 정기적으로 남수단의 여러 부족들을 습격한 것으로 보이지만 아랍인들은 이 지역의 부족민들을 절멸시키는 수준으로 체계적인 약탈까지는 하지 못했다. [[맘루크 왕조]]가 영내 베두인들을 탄압하는 과정에서 상당수의 베두인들이 이집트를 떠나 남부 수단으로 탈출하는데 이들은 수단 서부의 [[유목민]] 집단 [[바까라족]]의 기원이 되었다. 북부의 이슬람화된 누비아계 부족들의 영향으로 남수단과 북수단 사이 중간 지대 중에서도 서부에 해당하는 다르푸르 지역에 거주하는 [[푸르족]]들이 [[다르푸르 술탄국]]을 건국하였다. 푸르족들은 아프리카의 전통적인 [[조(식물)]], [[기장(식물)]] 농사 대신에 밀 농사를 짓고 밀가루로 만든 빵을 먹기 시작하였으며, 왕족들을 중심으로 한 초기 형태의 봉건제 사회를 확립하였다. 아랍인 노예 상인들의 지속적인 약탈로 남수단의 주요 민족 집단이었던 쉴룩족이 몰락하고 그 빈자리를 [[딩카족]]과 [[누에르족]]이 채우게 되었다. === 19세기 === 여러 군소 왕국들과 부족 집단으로 분열되어 있던 북수단과 [[다르푸르]] 지역, 그리고 남수단은 [[메흐메트 알리]]의 이집트군이 정복함으로써 통일되었다. 수단이라는 어휘는 아랍어로 원래 흑인이라는 뜻이다. 수단이 국명이 된 이유는 이집트의 수단 정복으로 [[앵글로-이집트 수단]]이 들어섰고, 해당 지역이 독립하면서 수단이라는 명칭을 그대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 20세기 === 수단이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났지만, 바시르 대통령의 독재하에서 남수단에서 탄압과 학살이 일어났다. 이에 남수단에선 바시르 정권에 대항하기 위해 독립군이 결성돼 바시르 정권과 내전을 치렀다.[[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10&oid=469&aid=0000660289|#]] === 21세기 === 2011년에 남수단은 수단에서 독립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4&oid=081&aid=0002208003|#]] 7월 9일에 바시르 대통령은 남수단의 독립을 축하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4&oid=003&aid=0003957314|#]] 7월 14일에 수단 의회는 수단에 거주하는 남수단인이 남수단 국적을 취득할 경우, 수단 국적을 말소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5163772|#]] 9월 19일에 양국은 국경검문소를 세우기로 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4&oid=003&aid=0004085268|#]] 10월 8일에 남수단 대통령이 수단을 처음 방문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4&oid=003&aid=0004122829|#]] 2012년 3월 27일에 수단과 남수단 사이에서 국경분쟁이 일어나자 바시르 대통령은 남수단 방문을 취소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4&oid=003&aid=0004410938|#]] 남수단의 기드온 가트판 정보부 장관은 수단군이 벤티우 지역에 있는 유전 근처에 폭탄 3개를 떨어뜨리는 등 공습을 감행했다고 밝혔다.[[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5567682|#]] 4월 4일에 남수단측은 수단군의 전투기를 격추했다고 주장했지만, 수단측은 부인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4&oid=003&aid=0004429256|#]] 4월 18일에 바시르 대통령은 남수단에 선전포고를 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4&oid=003&aid=0004453636|#1]][[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2&oid=022&aid=0002386827|#2]] 4월 21일에 바시르 대통령은 남수단에 송유관 재개통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1&oid=001&aid=0005590550|#]] 이에 따라 양국간 유전 분쟁이 격화됐다.[[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4&oid=022&aid=0002388489|#]] 4월 28일에 수단 군부는 남수단을 도운 혐의를 받고 있는 외국인 3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4&oid=003&aid=0004470974|#]] 유엔의 중재로 양국은 잠시 휴전했지만, 다시 양국간에 분쟁이 일어났다.[[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4&oid=021&aid=0002112208|#]] 5월 28일에 수단군은 남수단 국경의 분쟁지역에서 철수한다고 밝혔다.[[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4&oid=003&aid=0004524270|#]] 8월 4일에 수단과 남수단을 전면전 직전까지 끌고 갈 정도로 첨예했던 송유관 사용료 분쟁이 타결됐다.[[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1&oid=011&aid=0002258368|#]] 9월 26일에 양국은 비무장지대를 설치하기로 합의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5840350|#]] 10월 7일에 바시르 대통령은 남수단 국경지역을 개방하기로 남수단측과 합의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4&oid=003&aid=0004753797|#]] 2013년 1월 19일에 양국은 국경지대에서 군대를 철수시키는 방안을 두고 협의를 진행했지만, 협의는 결렬됐다.[[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4&oid=003&aid=0004936212|#]] 3월 11일에 남수단의 살바 키르 대통령은 비무장 지역을 설정하기 위해 남수단군에 수단 접경 완충지대에서 철수하라고 명령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4&oid=003&aid=0005022960|#]] 3월 12일에 남수단은 수단에 석유 수출 재개를 진행했다.[[https://www.voakorea.com/a/1619871.html|#]] 4월 12일에 바시르 대통령이 남수단을 처음 방문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6201885|#]] 6월 10일에 남수단측은 남수단 영토에 수단 군 병력 3,000여명이 무단 침입했다고 밝혔다.[[https://www.voakorea.com/a/1679062.html|#]] 9월 3일에 바시르 대통령은 남수단의 석유 송유관을 파괴하지 않는다고 밝혔다.[[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6464679|#]] 2014년 1월 6일에 바시르 대통령이 남수단 정부와 반군 간 유혈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남수단을 방문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4&oid=421&aid=0000627388|#1]][[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6686305|#2]] 그리고 양국은 유전지대 합동군 병력을 파견하기로 합의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4&oid=421&aid=0000628997|#]] 11월 11일에 수단측이 남수단의 식량 지원을 하자 유엔이 환영의 뜻을 밝혔다.[[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4&oid=003&aid=0006188950|#]] 2015년 2월 26일에 유엔측은 수단, 남수단에 아비에이 분쟁 해결을 촉구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4&oid=003&aid=0006377945|#]] 6월 13일에 유엔 난민기구는 남수단 국민 14,000명 이상이 2주일 동안 수단으로 피난했으며 이는 남수단의 석유 생산 지역에서 일어난 전투 때문이라고 밝혔다.[[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4&oid=003&aid=0006578262|#]] 2016년 1월 28일에 바시르 대통령은 남수단과의 국경을 개방한다고 밝혔다.[[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8152610|#]] 리크 마차르 전 부통령이 수단에서 모습을 드러냈다고 수단 정부가 발표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8639371|#]] 2017년 2월 26일에 남수단에서 기근이 일어나자 남수단에서 30,000명이 수단행을 선택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9069307|#]] 2019년에 바시르 대통령이 물러난 뒤, 남수단의 살파 키르 대통령은 수단의 여러 반군 조직 지도자들을 초청해 협상의 로드맵을 작성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4&oid=003&aid=0009504896|#]] == 영토 갈등 == 양국은 전술했다시피 영토갈등이 존재한다. 그리고 수단과 남수단 양국간에 국경의 유전을 두고 분쟁이 일어나기도 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4&oid=082&aid=0000347724|#]] 2013년 10월 28일에 수단과 남수단의 분쟁지역인 아비에이에서 주민들이 수단/남수단 귀속 투표를 진행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6563897|#]] 2017년 7월 22일에 아비에이 지역에서 벌어진 무력 충돌로 8명이 사망하고 1명이 부상을 당한 뒤 유엔 아비에이주둔 임시 보안군 사령부는 양측에 즉각 전투행위 중지를 명하는 성명을 발표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4&oid=003&aid=0008083581|#]] == 문화 교류 == [[남수단]]의 [[공용어]] 역할을 하는 [[주바 아랍어]]는 [[수단 아랍어]]의 영향으로 생겨난 언어이다. 하지만 남수단은 독립 이후 수단의 문화적 영향력을 줄이고 독립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차원에서 주바 아랍어를 [[아랍 문자]] 대신 [[로마자]]로 표기하는 정책 및 주바 아랍어를 영어나 [[딩카어]]로 대체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 관련 문서 == * [[수단 공화국/외교]] * [[남수단/외교]] * [[아프리카 연합]] * [[남수단/독립]] * [[대국관계일람/아프리카 국가/북아프리카 국가]] * [[대국관계일람/아프리카 국가/동아프리카 국가]] [[분류:수단 공화국-남수단 관계]][[분류:나무위키 아프리카 프로젝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