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수성책자.jpg|width=500]] [목차] == 개요 == 守城冊子. [[조선]] [[영조]] 27년인 1751년에 영조의 명으로 편찬된 [[한국]]의 수도 방어조령서. 현재 [[국립중앙도서관]],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일본]] [[교토대학]] 가와이문고 등에 소장되어 있다. == 내용 == 수성절목(守城節目), 수성윤음(守城綸音)이라고도 부른다. 조선 후기, 영조의 명으로 만들어진 한국의 수도방위책으로, 수도 [[한양]]의 방어 절차와 방어책을 명시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들인 공에 비해 너무나도 쉽게 수도가 함락되곤 했다. 조선 또한 마찬가지로 [[숭례문]]을 포함해 조선 초기 [[한양도성]] 축성 과정에 투입된 인원은 최대 33만 명, 공사 중 사망자만 827명에 달할 정도로 성곽에 엄청난 공을 들였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이 일어날 때마다 수도를 너무도 쉽게 적에게 넘겨줘야 했다. [[임진왜란]]이 벌어지던 1592년 5월 2일에는 조선군이 화살 한번 쏴보지 못하고 일본군의 도성 입성을 허락해야 했고, [[병자호란]] 때도 후금군 주력이 한양에 진입할 때 전투 한번 벌어지지 못했다. 이에 영조는 도성 방어 문제를 국가적 이슈로 삼고, [[훈련도감]], [[어영청]], [[금위영]] 삼군의 도성 방어절차 및 방어진법을 규정한 '도성삼군문분계총록(都城三軍門分界總錄)'과 '도성삼군문분계지도', 그리고 유사시 한양 도성 방어 절차를 규정한 '수성절목', 영조의 수도 방위 의지를 구체적으로 표명한 ‘수성윤음’의 네 가지 조령서를 제작하게 하였다. 수성책자는 이러한 수도 방어규정 및 절차 등을 총정리하여 만든 병서이다. 1700년대 당시 한국의 수도방위책에 대하여 상세히 알아볼 수 있는 자료로 인정받는다. 실질적으로 책과 관련된 유적으로는《[[조선 수도성곽과 방어산성]]》이 있다. == 외부 링크 == * [[http://citrain64.blog.me/100107898771|[우리나라 병서(兵書)] 수성책자 (守城冊子) - 조선시대 수도 방어 절차·규정 총정리]] * [[http://kostma.korea.ac.kr/dir/list?uci=RIKS+CRMA+KSM-WZ.1698.0000-20180331.KY_W_165|해외한국학자료센터 : 수성책자(守城冊子)]] * [[http://www.econovill.com/news/articleView.html?idxno=238781|[김병륜의 한국군사사 이야기] “활· 조총 없는 자,돌을 들어 한양 지키라” <수성책자>]] [[분류:조선의 병서]][[분류:규장각 소장품]][[분류:장서각 소장품]][[분류:서울특별시의 문화재]][[분류:해외 소재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