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파일:서울특별시 휘장_White.svg|width=30&height=30]] '''[[서울특별시의 기념물|{{{#ffffff 서울특별시의 기념물}}}]]''' || || 35호 ||<|2> ← || '''36호''' ||<|2> → || 37호 || || [[경천군 이해룡 사패지 송금비]] || '''수유동 분청사기 가마터''' || [[성균관/건축물#대성전 은행나무|성균관 대성전 은행나무]] || ---- ||<-2> [[파일:서울특별시 휘장_White.svg|width=28]] '''{{{#ffffff 서울특별시의 기념물 제36호}}}''' || ||<-2> {{{#fff {{{+1 '''수유동 분청사기 가마터'''}}}[br]{{{-1 水踰洞 粉靑沙器 가마터}}}}}} || ||<-2>{{{#!wiki style="margin: -10px"; margin-top: -5px; margin-bottom: 16px" [include(틀:지도, 장소=서울특별시 은평구 진관동 산25, 너비=100%, 높이=100%)]}}}|| || '''{{{#fff 소재지}}}''' || [[서울특별시]] [[강북구]] 삼각산로 5[br](수유동 산127-1) || || '''{{{#fff 분류}}}''' || 유적건조물 / 산업생산 / 요업 / 도자기가마 || || '''{{{#fff 수량 / 면적}}}''' || 가마 1基, 토지 875㎡ || || '''{{{#fff 지정연도}}}''' || [[2014년]] [[3월 27일]] || || '''{{{#fff 소유자[br](소유단체)}}}''' || 국유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수유동_분청사기_가마_전경.jpg|width=100%]]}}} || || '''{{{#000 수유동 분청사기 가마터[* [[http://www.heritage.go.kr/heri/cul/imgHeritage.do?ccimId=1723791&ccbaKdcd=23&ccbaAsno=00360000&ccbaCtcd=11|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 [목차] [clearfix] == 개요 == [[서울특별시]] [[강북구]] [[수유동]]에 있는 가마터이다. == 상세 == [[여말선초]] 시기에 [[북한산]] 일대에는, [[서울 한양도성|한양도성]]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제공하기 위한 [[도자기]]를 만드는 [[가마]]들이 여러 군데에 있었다. 이런 가마는 북한산말고도 [[수락산]]과 [[관악산]] 쪽에도 존재했다고 한다. 1990년대와 2000년대를 거치며 문화재 및 문화유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각 지자체에서는 관련 사업들을 실시했다. 서울특별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과정에서 발굴된 것이 바로 본 문서의 가마터이다. 2011년에 학술발굴조사를 통해 [[가마]]터의 규모와 구조, 관련 유물들의 성격 등을 자세하게 밝혀냈다. 가마의 구조는 계단식이 아니며 가마 내부에 설치물이 없어 [[아궁이]]에서 뗀 불이 곧장 [[굴뚝]]으로 바로 가게 하는 형태였다. 가마 중 상태가 그나마 괜찮은 것은 [[아궁이]]이며 소성실은 아궁이와 가까운 부분 일부를 제외하고는 파괴당한 모습이었다. 또한 소성실의 일부로 추정되는 곳에는 등산객들의 탐방로가 닦여있어 발굴을 할 수 없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용문매병편과_명문(名文)_자기류.jpg|width=100%]]}}} || || '''{{{#000 가마터에서 발견한 용문매병편과 명문(名文) 자기류[* [[http://www.heritage.go.kr/heri/cul/imgHeritage.do?ccimId=1723814&ccbaKdcd=23&ccbaAsno=00360000&ccbaCtcd=11|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 가마터이니만큼 [[도자기]] 유물들도 많이 나왔다. 주로 접시, 대접같은 일상 생활에서 쓰는 것들이 많이 발견되었다. 물론 저것만 나온 것은 아니고 병이나 잔, 합 같은 유물도 나왔다. [[도자기]]의 유행이 [[고려청자|청자]]에서 [[분청사기]]로 넘어가는 시기의 도자기 생산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적이다. 이러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4년 3월 27일에 [[서울특별시의 기념물|서울특별시 기념물]] 제33호로 지정받았다. [[분류:서울특별시의 기념물]][[분류:강북구]][[분류:서울특별시의 문화재]][[분류:도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