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조선의 옹주]][[분류:서출]] [include(틀:조선의 왕녀/익조 ~ 연산군)] ---- ||<-2> '''조선 성종의 왕녀[br]{{{+1 숙신옹주 | 淑愼翁主}}}''' || || '''출생''' ||[[1477년]]^^([[성종(조선)|성종]] 8년)^^ 혹은 [[1478년]]^^([[성종(조선)|성종]] 9년)^^ || || '''사망''' ||[[1487년]]^^([[성종(조선)|성종]] 18년)^^ [[8월 20일]] 혹은[br][[1489년]]^^([[성종(조선)|성종]] 20년)^^ [[11월 8일]][br]{{{-2 (향년 10~12세)}}} || || '''부왕''' ||[[성종(조선)|성종]] || || '''생모''' ||[[귀인 정씨(성종)|귀인 정씨]] 혹은 숙의 김씨 || [목차] [clearfix] === 개요 === [[조선]] [[성종(조선)|성종]]과 후궁의 딸.[* 생모는 정확히 누구인지 알려진 바 없지만, 1483년([[성종(조선)|성종]] 14년)에 [[귀인 정씨(성종)|귀인 정씨]]와 숙의 김씨에게서 딸이 한 명씩 태어났다는 기록이 있다. 아마 두 후궁 중 한 명의 소생으로 보인다.] === 생애 === [[요절]]해서 왕실 족보 《선원록》에도 누락되었다. 특이하게도 사망 기록이 2번이나 적혀있다. >숙신옹주(淑愼翁主)가 졸(卒)하였다. 임금의 딸인데 나이가 어려서 출가하지 않았었다. >[[https://sillok.history.go.kr/id/kia_11808020_005|《성종실록》 206권, 성종 18년 8월 20일 정해 5번째기사]] >숙신옹주(淑愼翁主)가 졸(卒)하였는데, 나이 12세이다. 임금이 나이가 어린 것 때문에 내수사(內需司)로 하여금 염습(斂襲)하고 빈소(殯所)하는 일을 맡게 하였다. >[[https://sillok.history.go.kr/id/kia_12011008_005|《성종실록》 234권, 성종 20년 11월 8일 임술 5번째기사]] 그러나 [[https://sillok.history.go.kr/id/kia_11808025_003|1487년 8월 25일]], [[https://sillok.history.go.kr/id/kia_11809006_001|1487년 9월 6일]], [[https://sillok.history.go.kr/id/kia_11907017_002|1488년 7월 17일]] 총 세 개의 기사에서 사망한 숙신옹주에 대한 내용이 있지만, 1489년에 졸(卒)하였다는 기록 이후에는 더 이상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1489년 사망 기록은 오기인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1487년에 사망한 숙신옹주의 당시 나이를 추측해볼 수 있는 기록이 있다. >예조(禮曹)에서 아뢰기를, "졸(卒)한 숙신 옹주(淑愼翁主)의 전물(奠物)을 제사(諸司)에서 게을리하고 공진(供進)하지 않으니, 추국(推鞫)하소서."하니, 전교하기를, "이제부터 '''하상(下傷)''' 이하의 상제(喪祭)에 드는 것은 제사(諸司)를 번거롭게 하지 말고 내수사(內需司)를 시켜 공급하게 하라." 하였다. >[[https://sillok.history.go.kr/id/kia_11809006_001|《성종 실록》 207권, 성종 18년 9월 6일 임인 1번째기사]] 여기서 ‘하상(下傷)’은 8세~11세 사이에 사망한 것을 말한다. 즉, 숙신옹주의 상제가 하상 이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성종의 다른 서녀인 정순옹주가 9살이 되었는데도 옹주 작호를 받지 못했던 것을 보면 작호를 받은 숙신옹주는 사망할 당시 10세~11세 정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즉, 1487년에 사망한 것으로 보면 1477년 혹은 1478년에 태어났고 1489년에 사망한 것으로 보면 1478년에 태어난 것이 되며, 이복자매인 [[순숙공주]](1478년 혹은 1479년 생), 혜숙옹주(1478년 생), [[휘숙옹주]](1478년 생 추정)와 비슷한 나이대로 보인다. [각주][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숙신옹주, version=69, paragraph=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