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조선의 후궁]] [include(틀:다른 뜻1, other1=조선 중종의 후궁 숙원 이씨, rd1=숙원 이씨(중종))] ---- [include(틀:조선의 후궁(환조 ~ 연산군))]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6E1D55, #89236A 20%, #89236A 80%, #6E1D55); color: #FFD400" '''조선 세종의 후궁'''[br]{{{+1 '''숙원 이씨 | 淑媛 李氏'''}}}}}} || || '''출생''' ||미상 || || '''사망''' ||[[1490년]] [[7월 3일]] 이후 || || '''배우자''' ||[[세종(조선)|세종]] || || '''자녀''' ||'''슬하 1녀''' 장녀 - [[정안옹주(세종)|정안옹주]](貞安翁主, {{{-3 1441 ~ 1461}}}) || [목차] [clearfix] == 개요 == [[조선]] [[세종(조선)|세종]]의 [[후궁]]. 가계에 대해 알려진 바 없으며, 슬하에 세종의 서차녀 정안옹주를 두었다. == 생애 == 숙원 이씨의 가계와 관련한 기록은 전무하며, 언제 태어났는지도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1441년(세종 23년), 세종과의 사이에서 [[정안옹주(세종)|정안옹주]]를 낳았다. 이후 내명부 종4품 숙원(淑媛)에 봉해졌다. 1450년(세종 32년), 세종이 승하한 이후 궁궐에 머물다가 이후 자수궁으로 출궁하였다. 딸인 정안옹주는 1453년([[단종(조선)|단종]] 1년), 심선(沈璿)의 아들 심안의(沈安義)와 혼인하였고 1남 1녀를 두었으나 1461년([[세조(조선)|세조]] 7년) 10월, 21세의 나이로 생모인 숙원 이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또한 숙원 이씨는 [[성종(조선)|성종]] 대에 외손자 심언(沈漹)의 출사를 위하여 봉보부인을 통해 당시 국구였던 [[정현왕후]]의 아버지 영원부원군 [[윤호(조선)|윤호]](尹壕)에게 청탁을 하여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성종실록 241권, 성종 21년 6월 7일 무자 4번째기사. [[http://sillok.history.go.kr/id/kia_12106007_004|#]] ] 윤호가 숙원 이씨의 서간을 읽고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아 성종이 사건을 무마하였다. 이 기록을 마지막으로 숙원 이씨와 관련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