荀緯 (182 ~ 223) [목차] [clearfix] == 개요 == [[고대]] [[중국]] [[후한]] 말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의 [[위(삼국시대)|조위]]의 인물이며 자는 공고(公高)로 [[사례(중국)|사례]] 하내군 사람. == 생애 == 어려서부터 문학을 좋아했고 [[양습]]이 [[주(행정구역)|주]] 안의 [[명사]]를 [[천거]]할 때 [[상림#s-2]], [[양준]], [[왕릉(삼국지)|왕릉]] 등과 함께 천거되어 [[현(행정구역)|현]]의 우두머리가 되었으며, [[건안]] 연간[* 196 ~ 220년이다.]에 군모연, 위태자서자가 되었다가 점차 옮겨 산시상시, 월기교위에 이르렀다. [[조비]]는 [[태자]]가 되기 전에 양준이 자신과 [[조식(삼국지)|조식]]을 칭찬하면서 한 쪽으로 가담하지 않았지만 조식을 아름답다고 여긴 것으로 인해 한스러워 했는데, 222년 조비의 수레가 [[완성]]에 도착할 때 [[조비/인간성|조비는 저잣거리의 열기가 가득하지 않다고 생각해 양준을 잡아들이려고 했다.]]~~[[뒤끝]]~~ 이 때 순위는 [[왕상(조위)|왕상]], [[사마의]] 등과 함께 양준을 구해주도록 청하면서 머리를 조아리고 피를 흘렸지만 조비가 허락하지 않아 양준은 자살하고 왕상은 분사하였으며, 본인은 223년 42세로 사망했다. [[한단순]], [[번흠]], [[노수]], [[정의(삼국지)|정의]], [[양수(삼국지)|양수]] 등과 함께 문체가 있었지만 [[건안칠자]]와는 함께 논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 창작물에서의 순위 == 소설 삼국지 조조전에서는 [[조조]]가 아들의 재능을 시험하는 자리에서 조식의 글에 대해 소탈함이 덜하지만 어떤 한 구절에 대해 채백개([[채옹]]), 변문례([[변양]])이 환생해도 이보다 더 잘 쓸 수 없을 것 같다고 칭찬했다. 조조가 [[조창]]이 [[오환족|오환]] 원정에 승리해 축하하는 자리에서 조비는 아버지 조조가 자신을 시험한 것을 알고 화가 나는 것을 참고 있었는데, 조비의 눈짓에 순위는 책 한 권을 받들면서 태자(조비)의 명으로 신서의 원고를 여러 편으로 나누어 정리해 첫 권에는 [[대왕]](조조)의 가계를 기록했으니 살펴봐달라고 했다. [각주][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순위, version=39)] [[분류:조위의 인물]][[분류:182년 출생]][[분류:223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