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북한의 섬]] [include(틀:세계의 섬들)] [include(틀:북한의 섬)] ||||<#000000><:>{{{#white {{{+3 순위도 }}}}}}|| ||<:><-2>[include(틀:지도, 장소=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황해남도 순위도, 높이=224px, 너비=100%)] || 巡威島 순위도 == 개요 == [[이북 5도]] 행정구역상 [[황해도]] [[옹진군(황해남도)|옹진군]] 흥미면에 있는 섬으로, 옹진군에서 가장 큰 섬이다. 북한 행정구역상으로는 [[황해남도]] 강령군 순위리에 속한다. 면적 26.5㎢로 [[백령도]], [[초도]]와 함께 '''황해도 3대 도서'''로 불렸다. 가장 높은 지점은 173m로 산지가 많은 편이다. 섬의 북서쪽에는 [[어화도]](漁化島)가 있는데, 여기는 흥미면이 아닌 동남면 관할이었다.[* 동남면 사곶~[[용호도(북한)|용호도]]~[[어화도]]를 이어주는 항로 때문.] 동북에서 서남으로 길쭉한 형태이며 중간 부분이 잘록하게 들어가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해당 만입 부분은 지금은 [[염전]]으로 활용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북 5도 행정구역상으로 2개 법정리가 있으며 동북쪽이 창암리(蒼巖里), 서남쪽이 예진리(禮津里)다. 특산물로는 [[유리]]의 원료가 되는 규사가 분포한다. 역사적 사건으로는 1846년 6월 [[김대건 안드레아|김대건]] 신부가 여기서 체포된 일이 있다. 강령반도 본토와는 1.3km 정도 떨어져 있다. 통일 후에는 다리가 생길 수도 있을 듯하다. 특이하게도 대한민국 국립해양조사원에서 매달 꼬박꼬박 순위도 지역의 [[http://www.khoa.go.kr/swtc/main.do|조석예보표(물때표)]]를 발표하고 있다. 국립해양조사원의 130여 개 예보지점 중에서 북한지방은 [[원산시|원산]]과 순위도 딱 두 곳뿐인데, 관측시설도 없는 곳의 [[조석|물때]] 예보가 가능한 이유는 해당지역의 자료를 [[어둠의 경로|가지고 있어]] 그것을 바탕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3/24/2009032402478.html|[그것은 이렇습니다\] Q: '밀물 썰물'의 지역명 중 '묵호'는 '동해' 아닌가?"]], 김성모 기자, 2009년 3월 25일, 《[[조선일보]]》.] == 역사 == [[조선]] 초기부터 목장을 설치해 [[말]]을 방목했으나 [[1711년]] 목장을 없애고 농지로 개간토록 하였다. [[1901년]] [[일본]] 군함 해문호가 지도 제작을 위해 이곳을 근거지로 삼고 황해도 지역을 측량하였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규사]] 광산이 운영되었으며, 월간 6여 톤의 생산량을 기록했다. 해방 이후 38도선 이남에 있는 [[옹진반도]] 전역과 함께 [[미군정]]에 속하였으나, [[6.25 전쟁]]을 거치며 [[북한]]의 영토가 되었다. NLL에 인접해 있어 주변 해상에서 남한의 선박이 북한에 나포되거나 반대로 북한의 선박이 NLL 이남을 침범했다가 남한측에 나포되는 일이 잦았다. [[1960년]] [[12월 19일]] 나포된 [[어선]]은 초기에 월남하려던 무장간첩선으로 오인되었으나 해군의 조사 결과 어선으로 드러났으며 [[12월 30일]] 선원 8명이 북한으로 인도되었다. [[1965년]] [[4월 26일]]에는 대영수산주식회사 소속 어선인 제6대영호가 선원 12명을 태운 채로 이 부근 해상에 진입했다가 [[납북]]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GPS]]를 이용한 위성항법장치가 민간에 널리 보급된 [[1990년대]] 이전까지는 '흥아호 납북 사건', '제1공영호 납북 사건' 등 유사 사건이 한동안 발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