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일:enhanced-buzz-19784-1370298524-24.jpg|width=100%]] || || 국경절 열병식[* 1984년 건국 35주년 열병식이다.]에서 정계 수뇌부에게 등장 부대 설명을 해주는 쉬친셴 중장의 모습이다. 왼쪽이 [[후야오방]], 오른쪽이 [[덩샤오핑]]이다. || [목차] == 개요 == 徐勤先(Xu Qinxian, 서근선) [[1935년]] ~ [[2021년]] [[1월 8일]] [[후베이성]] [[샤오간시]] 다우현(大悟縣) 출신으로 [[중국 인민해방군]] [[베이징군구]] 소속 제38집단군 사령관이었다. 최종 계급은 예비역 중장이다.[* 인민해방군은 준장이 없는 대신 상교(대령) 위에 대교가 있기 때문에 이게 한국의 [[준장]]에 대응되며 소장, 중장은 모두 한국과 동일 계급이다. 다만 중국군 상장은 한국군 대장에 대응되고 현역 군인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계급이다. 인민해방군에는 대장과 원수가 있긴 하지만 이 계급은 1956년 창군 원로에게만 수여되었으며 그 이후로는 수여되지 않는다.] [[천안문 6.4 항쟁]] 당시 정부에서 하달된 강제 진압 명령을 최초로 거부했던 [[참군인]]이며 중국판 [[안병하]]다. 그는 '''"지금은 분명히 전시가 아니다. 그러니 구두 명령을 집행할 수 없고 진압 작전에 참여할 수도 없다"'''[* 이런 명령은 당연히 문서화할 수도 없고 문서화하지도 않는다. 그도 이것을 알기에 이런 말로 대답했다.]라는 대답으로 [[베이징군구]] '''부사령관'''의 명령을 거부했다. == 생애 == 쉬친셴 장군은 1935년 [[중화민국]] [[호북성]] 예산현(禮山縣)[* 現 [[중화인민공화국]] [[후베이성]] [[샤오간시]] 다우현(大悟縣).]에서 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16살이 되던 해인 1950년에 [[6.25 전쟁]]이 터지자 군에 자원입대하였다.[* 사실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한 번 거부되었으나 '''[[혈서]]'''를 써서 억지로 들어갔다.] 쉬친셴은 그곳에서 실전을 치렀고 제38집단군의 전차장이 되었다. 1980년 제1장갑사단의 사단장이 되었으며 1984년 대규모 군사훈련에 참여했다. 그리고 [[바오딩시]][* 베이징과 붙어있다. 대한민국으로 치면 [[성남시]] 정도의 위치다.]에 기지를 둔 제38집단군의 부사령관을 거쳐 1987년 사령관에 올랐다. 이 자리는 한국으로 치면 [[수도기계화보병사단]] 그 이상의 위상을 가진 유서 깊은 정예부대[* 6.25 전쟁 때 수많은 공훈을 기리기 위해 당시 중국인민지원군 총사령관이었던 [[펑더화이]]에게서 만세군이라는 별칭까지 받았고 인민해방군 내의 등급별 카테고리에서 갑종 집단군으로 지정되어 장갑차와 전차 등을 보유한 장갑집단군으로 변모하였다.]이기 때문에 출세 코스여서 웬만하면 [[상장(계급)|상장]]으로 진급할 수 있었고 위에서 보듯이 [[열병식]]에서 [[덩샤오핑]]과 나란히 등장할 정도로 위상이 높았었다. 1988년에는 [[소장(계급)|소장]]에 진급했다. 그런데 [[천안문 6.4 항쟁]] 당시 제38집단군 사령관으로서 출동 진압명령을 받았으나 쉬친셴은 '''"인민해방군은 인민에게 총부리를 돌릴 수 없다"'''라며 출동을 거부했다. 베이징 군구 사령관 저우이빙은 군 수뇌부에 보고했고 이후 군 수뇌부는[*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친지웨이]] 상장과 총참모장이었던 양더즈 상장은 온건파였고 군투입에 반대했기 때문에(이후 친지웨이는 연임이 아니라 단임으로 예편하였고 양더즈도 그해 11월 예편하고 둘 모두 군에서 완전히 은퇴했다.) 참모차장이었던 [[류화칭]]이 결정했을 가능성이 높다. [[양상쿤]]이 결정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양상쿤은 당시 국가주석이기는 했지만 거의 [[바지사장]]이었기 때문에 실권은 거의 없었다.] 쉬친셴을 해임하고 가택연금했다. 이후 소식이 끊겼기 때문에 한때 서방에서는 사형에 처해졌다는 보도도 나왔다. 명령 불복종 죄로 군사재판에 회부되어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중국공산당]] 당원 자격을 박탈당했다. 출소 후에는 거주지 제한 조치가 취해져 [[허베이성]] [[스자좡시]]를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천안문 6.4 항쟁이 일어난 지 20여 년 후 홍콩 언론 [[빈과일보]]가 수소문 끝에 그를 찾아가 인터뷰했는데 "'''[[참군인|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다시 그때로 되돌아가도 그렇게 하겠다.", "차라리 죽음을 당할지언정 역사의 죄인은 되지 않겠다."]]'''라고 대답했다.[[https://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2/16/2011021600114.html|#]]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급속히 발병하면서 사실상 봉쇄 상태에 들어간 스좌장시 소재 군 병원에서 85세의 나이로 2021년 1월 8일 사망했다. == 여담 == * [[바이두 백과]]에서는 "[[류야저우]]는 보고서에서 '쉬친셴은 [[인민해방군]] 내에서 현대화된 군사이론을 알고, 현대화된 무기를 잘 사용하던 몇 안 되는 소장파 장성이었다.'라고 평가했다."라고 언급하면서 그에 대한 인물평을 대신했다. [[분류:중국의 군인]][[분류:샤오간시 출신 인물]][[분류:1935년 출생]][[분류:2021년 사망]][[분류:6.25 전쟁/군인]][[분류: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죽은 인물]][[분류:천안문 6.4 항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