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서고트 국왕)] ||<-3><#383B40> '''{{{#FFF 서고트 왕국 발티 왕조 3대 군주}}}''' [br] {{{+2 {{{#FFF '''Sigeric | 시게리크'''}}}}}} || ||<|2><#383B40> '''{{{#FFF 제호}}}''' ||<#383B40> '''[[한국어|{{{#FFF 한국어}}}]]''' ||시게리크 || ||<#383B40> '''[[라틴어|{{{#FFF 라틴어}}}]]''' ||Sigeric || ||<-2><#383B40> '''{{{#FFF 생몰 년도}}}''' ||미상 ~ 415년 8월 22일 || ||<|4><-2><#383B40> '''{{{#FFF 재위 기간}}}''' ||415년 8월 15일 ~ 415년 8월 22일 || [목차] [clearfix] == 개요 == [[서고트 왕국]] 3대 군주. [[아타울프]] 암살을 사주한 뒤 왕위에 올랐으나 7일만에 살해되었다. == 행적 == 아타울프에게 주살된 시루스의 형제라는 것 외에 그의 기원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역사가 M. 로사리오 발베르데는 그가 [[알라리크]]와 [[아타울프]]가 속한 발티 왕조에 반대하는 로소몬 씨족의 일원이었다고 한다. 반면 아나 M. 히메네스는 발티 왕조의 혈통 존재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5세기의 기록이나 고고학적 증거가 없기 때문에, 이 왕조의 혈통은 서고트 왕국이 자리잡게 한 [[테오도리크 1세]]부터 시작한다고 주장한다. 아타울프는 지난날 알라리크와 자신을 죽이려 했고 413년 갈리아에서 [[요비누스]]의 최측근을 맡으면서 갈리아에 정착하려는 것을 방해한 시루스를 주살했다. 그러면서도 시루스의 세력을 숙청하지 않고 그대로 수용했는데, 이것이 화근이었다. 시게리크는 형을 죽인 그에게 복수하고 싶어했고, 마침 [[서로마 제국]]과 [[호노리우스]]와의 협상에 연연하며 풍요로운 아프리카로 진출하지 않으려 하는 아타울프에게 불만을 품은 고트족 귀족들을 포섭했다. 415년 8월 14일, 아타울프는 바르셀로나의 궁정 마구간에서 말을 보살피던 중 두비우스 또는 에버울프라는 이름의 하인에게 살해되었다. 다음날 지지자들의 추대로 서고트족의 왕이 된 그는 아타울프가 첫번째 결혼을 통해 낳은 다섯 아이들을 모두 죽이게 했으며, 아타울프의 두번째 부인이자 로마 제국의 공주 [[갈라 플라키디아]]를 학대했다. 그는 갈라에게 말을 탄 자신을 뒤에서 따라가며 성벽 출구에서 도심까지 12마일을 걸어가게 했다. 이는 로마 제국이 이방인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뒤 [[개선식]]을 개최하는 것을 따라한 것이었다. 그러나 415년 8월 22일 왕위에 오른지 7일만에 아타울프를 추종하던 이들에게 살해되었고 [[왈리아]]가 새 왕으로 선포되었다. 왈리아는 서로마 제국과 평화 협정을 맺은 뒤 갈라 플라키디아를 로마로 돌려보냈다. [[분류:서고트 국왕]][[분류:415년 사망]][[분류:폐위된 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