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dney C. "Sid" Phillips Jr.''' (1924.9.2 ~ 2015.9.26 ) [[파일:attachment/Sid-Real_Life-Younger.jpg|width=300]]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시드니 필립스. [[파일:attachment/Marine-Sid-Phillips2.jpg]] 말년의 필립스 옹. [목차] == 개요 == '''시드니 필립스 주니어'''는 미 앨라배마 주에서 왕진을 주로 다니는 가정방문 주치의로 직업은 의사 겸 작가이다. 키는 178cm. 그는 켄 번스(Ken Burns)의 PBS 다큐멘터리, "The War"와 [[HBO]] 방송국의 전쟁 드라마 "더 퍼시픽, The Pacific"에 많은 자료와 인터뷰를 제공했다. 또한 그는 [[제2차 세계 대전|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합중국 해병대]]에 복무했던 참전군인이며, 드라마 [[더 퍼시픽]]의 등장 인물이기도 하다.[* 더 퍼시픽에서는 조연이지만 컴패니언북 퍼시픽에서는 유진이 등장하기 전까지 박격포 부대의 서사를 담당하는 주연이다.] 그는 미합중국 해병대 제1사단 1연대 2대대 H(How)중대 81mm 박격포병으로 1941년부터 1945년까지 복무했으며, 군에서 그의 최종 [[계급]]은 상병(Corporal, Grade 5)이다. 앨라배마의 모빌 출신으로 [[유진 슬레지]]와는 동향 친구이자 배꼽친구. 유진이 심장 문제로 [[입대]]하지 못하게 됐을 때 자원하여 해병대에 입대한다. 박격포병으로 여러 전투에서 생존한 유능한 해병대원. 입대 전 유진처럼 [[밀덕]]이었고, 전역 후 군복도 싫어하게 된 유진과는 달리 참전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파부부 전투를 끝으로 귀향해 유진의 부모에게 박격포는 소총소대보다 조금 뒤에 있으니 안전할 거라고 안심시킨다.[* 그러나 유진은 [[PTSD|정신적 외상]]이 착착 진행중이었다. 게다가 박격포반은 맨 앞에 나가는 소총수보다 '조금은' 뒤에 있긴 했지만 전선 전체로 보면 사실상 소총수와 같이 맨 앞에 서는 자리였다.] [[더 퍼시픽]]에서는 원래는 레키네 그룹에 있었으나 언제부터인가 그네들 사이에 안 끼어 있더니 어쩐지 미국으로 돌아간다.[* 여기까지가 드라마의 내용이지만 컴패니언북인 퍼시픽에 따르면 징계로 인해 취사병으로 근무하다 글러스터 곶에서 귀양조로 뽑혀 복귀한 것이다. 이 때 옆 연대로 배치된 유진을 잠깐 만난다.] 드라마 더 퍼시픽에서는 배우 애슈턴 홈스(Ashton Holmes)가 시드니 필립스 배역을 맡아 연기했다. == 생애 == 시드니 필립스는 1924년 미국 앨라배마 주 모빌에서 시드니 필립스 시니어의 2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필립스 시니어는 1차 대전 참전 용사로 앨라배마에서 교사를 하고 있었다. 필립스는 1942년 [[유진 슬레지]]와 함께 머피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직전, 부모의 허락을 얻어 1941년 12월 8일 해병대에 지원한다. [[과달카날 전투]]에서는 박격포 부대원으로써 상당한 활약을 하였고, 이후 [[멜버른]]으로 가서는 '그웬'이라는 여자와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더 퍼시픽 3화에 이 부분이 짧게나마 묘사되어 있다.] 멜버른에서의 휴식 후 필립스는 다시 글로세스터 곶 전투로 파견되었는데, 최전선에서 겨우 15 야드 후방에서 싸웠던 적도 있다고 한다. 글로세스터 곶 전투가 끝난 후 그는 미국으로 돌아온다. 그는 미국으로 돌아온 후 V12 프로그램을 이수하여 의사가 되려고 하고, [* 글로스터 곶 전투 도중 결심하였다고 한다.] 스프링힐 대학에 진학하여 내과 의사가 된다. 종전 후, 그는 1946년 메리 휴스턴이라는 여성과 결혼한다. 이 때 들러리가 [[유진 슬레지]] 였다고 한다. 그는 1948년 졸업한 후 계속 내과 의사로 지냈으며, 고향인 모빌에서 2015년 9월 26일 타계했다. 그는 [[더 퍼시픽]] 이외에도 'The War' 라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제작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알려져 있다. 시드니 역시 태평양 전쟁의 참상[* 2010년 인터뷰 당시 [[과달카날]]에서 일본군이 미군 전사자 시신의 목을 자르고 오체분시한 체 부패되도록 방치한 모습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으며 이로 인해 그와 그의 부대원들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전쟁 동안 일본군 포로를 단 한명도 잡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그는 귀국한 뒤 전쟁이 가져다 준 증오와 정신적 충격을 떨쳐내려 노력했고 비교적 수월하게 사회 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증언했다.]에 충격을 받긴 했으나 특유의 쾌활하고 강인한 성격으로 비교적 빠르게 사회에 복귀했다고 하며 유진 슬레지나 다른 병사들과 비해 정신적 외상은 별로 심하지 않았다고 한다. 전후에는 다년간 극심한 [[PTSD]]와 [[우울증]], [[악몽]]에 시달리던 유진 슬레지를 곁에서 격려하고 위로하며 "전쟁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었다고 한다. [[분류:더 퍼시픽]][[분류:1924년 출생]][[분류:2015년 사망]][[분류:모빌 출신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