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일본 덴노)] [include(틀:역대 일본 상황)]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450px-Emperor_Shirakawa.jpg|width=100%]]|| ||<:> '''[[시호]]''' ||시라카와 덴노 (白河 天皇, 백하 천황)|| ||<:> '''[[휘]]''' ||사다히토(貞仁)|| ||<:> '''[[왕릉|능호]]''' ||조보다이인능(成菩提院陵)|| ||<:> '''생몰''' ||[[1053년]] [[7월 7일]]~[[1129년]] [[7월 24일]]|| ||<:> '''재위''' ||[[1073년]] [[1월 18일]]~[[1087년]] [[1월 3일]]|| ||<:> '''[[연호]]''' ||조호(承保)→조랴쿠(承暦)→에이호(永保)→오토쿠(応徳)|| ||<:> '''황거''' ||헤이안쿄(平安京)|| [목차] == 개요 == 일본의 제72대 [[천황]]. [[고산죠 덴노]]와 후지와라노 모시(시게코)의 아들이었다. '''[[인세이]](원정) 제도의 시조'''로 증손자([[스토쿠 덴노]])의 통치까지 간섭한 천황이었다. 아들인 제73대 [[호리카와 덴노]] 때부터 시작하여 손자인 제74대 [[도바 덴노]], 증손자인 제75대 [[스토쿠 덴노]]에 이르기까지 3대 43년간 인세이를 펼쳤다. 이것을 '''치천의 군'''(治天の君)이라 한다. == 생애 == 사다히토 친왕은 당시 황태제였던 아버지 타카히토 친왕과 어머니 후지와라노 시게코(藤原茂子, 모시) 사이에서 태어났다. 17세에 타카히토 친왕이 즉위하자 황태자가 되었다. 1073년 1월 18일, [[고산죠 덴노]]가 인세이를 실시할 목적으로 사다히토에게 양위하면서 20세에 덴노가 되었고, 반년 만에 고산죠 덴노가 급사하면서 실질적인 황권을 쥐게 되었다. 즉위 이후부터 섭관가이자 실권자인 후지와라 가문의 권세를 약화시키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오토쿠 3년(1086), 병사한(1085) 황태제 사네히토 친왕 대신 8세의 타루히토 친왕(제73대 [[호리카와 덴노]])을 황태자로 내세운 다음날 양위했다. 이로써 시라카와인(白河院)에서 상황 자신이 정무를 맡는 이른바 '''[[인세이]]'''(院政, 원정)가 본격적으로 출현했다. 이후로 임명된 셋쇼(섭정)와 칸파쿠(관백)는 명목상의 존재에 가깝게 되었지만, 시라카와 상황 역시 당초부터 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재위 당시부터의 칸파쿠였던 '''후지와라노 모로자네'''와는 협조 관계를 유지하여 친정기 및 원정 초기에는 섭관정치와 큰 차이가 없었다. 이러한 상황은 모로자네의 급사에 의한 섭관가 내부의 혼란 및 호리카와 덴노의 붕어로 어린 손자인 [[도바 덴노]]가 즉위한 것을 계기로 바뀌게 되었다. 어린 천황(도바 덴노)의 재출현과 정치적으로 미숙한 젊은 섭정('''후지와라노 타다자네''')의 등장이 시라카와 상황에게로 권력이 집중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고 짐작된다. 실권을 장악한 법황은 중하류 귀족 및 무가 출신의 신하를 임용해 전제적인 정치를 실시하다가 1129년 향년 77세의 나이로 붕어했다. == 기타 == >賀茂河の水、双六の賽、山法師、是ぞわが心にかなわぬもの >'카모가와[* 鴨川. 교토 시내를 흐르는 강으로 당시에는 賀茂河로 표기했다.]의 물, [[쌍륙]]의 주사위, 야마보시[* 당시 히에이산 엔랴쿠지의 [[승병]]을 통칭하는 단어. 남쪽의 고후쿠지의 승병은 '중도'(衆徒) 혹은 '나라보시'(奈良法師)로 불렸다..]. 이것들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 당시에도 큰 위세를 떨쳤던 [[승병]] 세력에 대한 유명한 표현을 남겼다. 승병의 힘이 너무 커서 자연 현상인 강물과 도박의 운수만큼이나 다루기 힘들다는 뜻. 이 표현은 《[[헤이케모노가타리]]》(平家物語, 평가물어)에서 나온 것이다. [[타이라노 키요모리]]와 [[스토쿠 덴노]]가 그의 사생아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NHK 대하드라마 시리즈|NHK 대하드라마]] <[[타이라노 키요모리(드라마)|타이라노 키요모리]]>에선 손자의 아내와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는 묘사가 나온다. 여기서는 타이라노 키요모리가 그의 사생아란 설정으로 등장하며 살생 금지 등 온갖 악법을 창시하고 키요모리의 일평생을 괴롭힌 걸로 나온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천황이 허수아비 국왕이 되게만든 [[만악의 근원]]인데, 그가 시행한 인세이가 일본 정치의 고질적인 악습으로 남게되면서 황실의 권위가 떨어지고 결국 막부를 위시한 무사정권에게 정치 권력이 넘어갔기 때문이다. == 가계 == * 중궁(中宮) : [[후지와라노 가타이코]] * 제1황자 : 아츠후미 친왕(敦文 親王) (1074~1077) * 제1황녀 : 야스코 내친왕(媞子 内親王) (1076~1096) * 제3황녀 : 요시코 내친왕(令子 内親王) (1078~1144) * 제3황자 : [[호리카와 덴노|타루히토 친왕]] * 제4황녀 : 요시코 내친왕(禛子 内親王) (1081~1156) * 뇨고(女御) : 죠쿄덴노 뇨고(承香殿女御) 후지와라노 미치코(藤原道子) (1042~1132) - 후지와라노 요시나가(藤原能長)의 딸 * 제2황녀 : 요시코 내친왕(善子 内親王) (1077~1133) * 전시(典侍) : 후지와라노 츠네코(藤原経子) - 후지와라노 츠네히라(藤原経平)의 딸 * 제2황자 : 카쿠교 법친왕(覚行 法親王) (1075~1105) * 전시(典侍) : 미나모토노 모로코(源師子) (1070~1149) - 가타이코의 동생 * 제4황자 : 카쿠호 법친왕(覚法 法親王) (1092~1153) * 장시(掌侍) : 미나모토노 모리코(源盛子) - 미나모토노 요리츠나(源頼綱)의 딸 * 제5황녀 키미코 내친왕(官子 内親王) (1090~?) * 궁인(宮人) : 미나모토노 요리코(源頼子) - 모리코의 언니 또는 동생 * 궁인(宮人) : 카스가노도노(春日殿) 후지와라씨(藤原氏) - 후지와라노 모로카네(藤原師兼)의 딸 * 제5황자 : 쇼에 법친왕(聖恵 法親王) (1094~1137) * 궁인(宮人) : 후지와라씨(藤原氏) - 후지와라노 스에자네(藤原季実)의 딸 * 제6황녀 : 노부코 내친왕(恂子 内親王) (1093~1132) * 궁인(宮人) : 미나모토씨(源氏) - 미나모토노 아키후사(源顕房)의 딸 * 황자 : 죠쇼(静証) * 궁인(宮人) : 미나모토씨(源氏) - 미나모토노 마사나가(源政長)의 딸 * 황자 : 교케이(行慶) (?~1165) * 궁인(宮人) : 미나모토씨(源氏) - 미나모토노 아리무네(源有宗)의 딸 * 황자 : 엔교(円行) (1128~1143) * 궁인(宮人) : 기온노 뇨고(祇園 女御) * 궁인(宮人) : 기온노 뇨고(祇園女御)의 여동생 * 궁인(宮人) : 로노 온카타(廊御方) - 후지와라노 미치스에(藤原通季)의 딸 * 궁인(宮人) : 카모노 뇨고(賀茂女御) 宇礼志岐(1070~1148) - 카모 가사스케(賀茂重助)의 딸 * 궁인(宮人) : 카모노 뇨고(賀茂女御) 伊波比乎 - 카모 가사스케의 딸 [[분류:천황]][[분류:일본 상황]][[분류:1053년 출생]][[분류:1129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