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1468년 출생]][[분류:1554년 사망]][[분류:조선의 관리]][[분류: 고령 신씨]] [목차] == 개요 == 조선 전기의 문신. [[자(이름)|자]]는 윤지(潤之). [[아호|호]]는 일재(逸齋). 본관은 [[고령 신씨|고령]](高靈). == 생애 == 신광윤(申光潤)은 1468년(세조 14) 9월 24일에 태어났으며, 영의정을 지낸 보한재 [[신숙주]]의 손자이다. 신광윤의 아버지는 내자시정을 지낸 신형(申泂), 어머니는 정부(鄭溥)의 딸이며, 아내는 덕산현감을 지낸 지준(池浚)의 딸이다. 아우는 좌찬성을 지낸 [[신광한]]이며, 예조참판을 지낸 [[신종호]], 좌의정을 지낸 [[신용개]]와는 사촌이다. 신광윤은 문음으로 제릉참봉, 사온서 봉사, [[사옹원]] 직장, 한성부 참군을 역임하였다. [[연산군]]의 [[갑자사화]] 때 [[윤필상]]의 외손서(外孫壻)로 연좌되어 구금되었다가 [[중종반정]]으로 석방되었다. 1510년(중종 5) 전함사 별제로 제수되었으나 벼슬에 뜻이 없어 청안[* 淸安(충북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석성리)]으로 낙향하였다. 1540년(중종 35) 묵정[* 墨井(충북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관정리)]으로 이거하였다. 1546년(명종 1)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으며, 1549년(명종 4) 수질(壽秩)로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제수되었다. 시율(詩律)에 능하여 그 날의 일을 반드시 시로 적었다고 한다. 1554년(명종 9) 10월 15일에 세상을 떠났으며,[* 묘비(墓碑)가 청주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금석문(金石文)이다.([[https://v.daum.net/v/20220209134802015]])] 좌승지 겸 경연참찬관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