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신라 시중)] [include(틀:역대 신라 상대등)] ||<-5><:> [[천마도|[[파일: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png|width=60]]]] [br] '''[[상대등|{{{+1 {{{#ffffff 신라의 상대등(上大等)}}}}}}]]''' || || [[김사인]] || {{{+1 ←}}} || '''{{{#ffffff 신충}}}''' || {{{+1 →}}} || [[만종]] || [목차] == 개요 == 信忠 / 金忠臣(?) / 金忠信(?) [[통일신라]] 중대의 [[진골]] [[귀족]]. 관등은 [[이찬]]. == 생애 == 726년 4월 [[김충신]](金忠臣)이 [[당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는데 이 김충신이 신충과 동일인물의 이름을 다르게 표기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한편 734년에 당나라에서 숙위하며 머무르고 있다가 당나라 황제에게 본국으로 돌려보내 줄 것을 요청한 김충신(金忠信)과도 신충이 동일인물이란 설도 있다.[* 김수태, 《신라중대 전제왕권과 진골귀족》, 서강대대학원 박사학위논문, 1990, 113쪽] [[삼국유사]]에 따르면 왕위에 오르기 전의 [[효성왕]]과 매우 가까운 관계로 [[바둑]]을 즐겨 두었다고 한다. 여기서 효성왕과 한 약속이 [[향가]] 중 하나인 [[원가]]의 배경이고 신충이 원가의 작사가이다. [[경덕왕]] 시대 [[757년]] 전임 상대등 [[김사인]]이 병에 걸려 관직을 그만두었으므로 신충이 [[상대등]]을 역임했고 [[763년]] 8월 [[시중]] [[김옹]]과 함께 사직했다. 그가 나이들어 은거한 후 [[경남]] [[산청군]]의 [[지리산]] 자락에 사찰 단속사를 창건했다. 이 절은 조선시대까진 있었지만 조선 때 훼손됐고 지금도 [[단속사지 삼층석탑]]이 [[대한민국의 보물]]로 남아있다. [[분류:신라의 상대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