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가톨릭 대립교황)] ||<-3><:> '''[[교황]]명''' ||<-9><:> 실베스테르 4세(Sylvester IV) || ||<-3><:> '''세속명''' ||<-7><:> 마기눌프(Maginulf) || ||<-3><:> '''출생지''' ||<-7><:> 실전됨 || ||<-3><:> '''사망지''' ||<-7><:> 안코나 || ||<-3><:> '''생몰년도''' ||<-7><:> ? ~ ? || ||<-3><:> '''재위기간''' ||<-7><:> 1105년 ~ 1111년 || [목차] [clearfix] == 개요 == 교황 [[파스칼 2세]]에 대적한 [[대립교황]]. == 행적 == 출생지, 출생년도, 부모관계 등 기원에 대해서는 전해지지 않으며, 교황이 되기 전에는 페스케리아에 있는 산탄젤로 대성당의 주교로 활동했다. 1105년 교황 [[파스칼 2세]]를 적대시한 로마 귀족들은 파스칼 2세가 부재한 틈을 타 파스칼 2세를 성직매매와 이단 혐의로 폐위를 선언하고 그를 교황 실베스테르 4세로 옹립했다. 1105년 11월 18일 [[라테라노 대성당]]에서 봉헌한 그는 파스칼 2세가 로마로 돌아오자 맞서 싸웠다. 이때 스폴레토 공작이자 안코나 후작인 [[베르너 2세]]가 그를 지원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로마로 진군하자, 파스칼 2세는 이를 피해 [[테베레 강]] 위의 섬으로 도주했다. 그러나 로마 시민들이 파스칼 2세를 옹호하며 봉기를 일으키는 바람에, 실베스테르 4세는 베르너 2세와 함께 티볼리로 피신했다가 다시 오시모로 이동했다. 1111년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하인리히 5세]]가 성직자 서임권 분쟁을 종식하기 위해 제국군을 이끌고 이탈리아로 진군하면서 파스칼 2세에게 자기 뜻대로 하지 않으면 실베스테르 4세로 대체하겠다고 위협했다. 파스칼 2세는 이에 위협을 느끼고 황제와 비밀 협정을 맺었다. 협정의 내용은 황제가 서임권을 포기한다면, 대신 독일에 있는 교회의 재산과 권리를 황제에게 넘기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협정 내용이 나중에 발표되자, 자신의 재산과 권리를 황제에게 반납해야 하는 독일 주교들과 영주들이 크게 반발했다. 로마 시민들은 하인리히 5세에게 반감을 품고 있었기에 이를 틈타 봉기를 일으켰다. 하인리히 5세는 급히 황제 대관식을 중단하고 파스칼 2세와 일부 추기경을 인질로 잡은 후 피신했다. 파스칼 2세는 2달간 황제에게 억류되었다가 결국 하인리히 5세에게 굴복하여 황제의 서임권을 인정했다. 1111년 4월 13일 로마의 봉기를 제압하고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대관식을 재차 거행한 황제는 인질로 잡았던 파스칼 2세와 추기경들을 풀어준 뒤 어떠한 보복 행위를 하지 않겠다고 합의했다. 여기에 실베스테르 4세를 소환한 뒤 교황직에 대한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파스칼 2세에게 경의를 표하라고 명령했다. 실베스테르 4세는 이에 동의하여 교황 직에서 물러난 뒤 베르너 2세의 보호 아래 안코나에서 여생을 보냈다고 전해진다. [[분류:대립교황]][[분류:1102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