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 ||아다르나세[br]([[조지아어]]: ადარნასე, [[영어]]: Adarnase)|| || '''출생''' ||미상|| || '''사망''' ||미상|| || '''직위''' ||이베리아 초스로이드 왕조의 가신|| [목차] [clearfix] == 개요 == 이베리아 초스로이드 왕조의 가신. [[바그라티온 왕조]]의 시조이다. == 생애 == 중세 조지아 연대기 <[[바크탕 1세|바크탕 고르가살]]의 역사>에 따르면, 그는 이베리아 초스로이드 왕조의 통치자 아르칠리에게 찾아와 토지를 요구했고, 슐라베리(Shulaveri)와 아르타니(Artani)를 받는 대가로 아르칠리의 가신이 되기로 동의했다고 한다. 연대기에 따르면, 그는 유대 왕국의 군주 [[다윗]]의 후손이자 맹인 아다르나세의 손자[* 다른 사본에 따르면 조카]라고 한다. 조지아 역사 연구가 역사가 키릴 토마노프는 맹인 아다르나세는 아르메니아 바그라투니 왕조의 군주 아쇼트 3세라고 가정했다. 이에 따르면, 아쇼트 3세의 아들 바삭은 772년 아랍 통치에 대항한 아르메니아 귀족들의 반란이 실패한 뒤 조지아로 피신하여 그곳의 공작 과람의 딸과 결혼하여 그의 궁정에서 살았고,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바로 그라고 한다. 하지만 바삭에 대한 조지아의 문헌 기록은 존재하지 않아서 확실하지 않다. 그는 이베리아 초스로이드 왕조의 왕자 네르세의 딸과 결혼하여 아들 [[아쇼트 1세]]와 딸 라타브리아를 낳았다. 라타브리아는 아버지에게 토지를 준 아르칠리 왕의 아들 후안셰르와 결혼했다. 806년 후안셰르가 사망하자, 아다르나세는 딸을 통해 사위가 가지고 있던 재산과 토지를 받아냈다. 그가 언제 사망했는지는 기록이 전해지지 않아 알 수 없지만, 807년경 아들 아쇼트 1세가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은 것만은 분명하다. 훗날 아쇼트 1세는 타오-클라제티 공작이 되어 [[바그라티온 왕조]]의 기반을 닦았다. [[분류:바그라티온 가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