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토막글)]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Ahmed_Orabi_1882.png|width=500]] 아라비 파샤(Arabi Pasha, [[1841년]] [[4월 1일]] ~ [[1911년]] [[9월 21일]])는 [[이집트]]의 독립 운동가다. [[자가지그]] 지역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오스만 투르크]]의 봉신국인 [[메흐메드 알리|메흐메드 알리 왕조]]의 군인이 되었다. 1879년, 그는 '이집트인을 위한 이집트'라는 구호를 내걸고 [[오스만 투르크]]와 알바니아계 [[메흐메드 알리|메흐메드 알리 왕조]]는 물론 [[수에즈 운하]]에 대한 권리를 바탕으로 이집트에 간섭하던 [[영국]]과 [[프랑스]]를 포함하는 모든 외세에 반대하는 민족주의 반란인 아라비혁명의 지도자로 활동했다. 이 반란을 진압할 힘이 없던 [[메흐메드 알리|메흐메드 알리 왕조]]의 헤디브(군주) 테우피크 파샤는 1882년 아라비 파샤를 군사 대신으로 임명하는 것으로 반란군과 타협했다. 군사 대신이 된 아라비 파샤는 영국의 군사 개입을 반대하는 데 앞장섰는데, 이 때 몇몇의 급진파가 [[알렉산드리아(이집트)|알렉산드리아]]의 외국인에게 해를 끼치는 사건이 발생했다. 영국은 이 사건을 빌미로 파병하여 아라비 파샤를 체포하고 그 일파들을 진압했으며, 이후 이집트에 영국군을 주둔시킨 후 영국의 보호령으로 삼아버렸다. ([[영국 치하 이집트]]) 1882년 영국인들에게 사형 선고를 받고 영국령 실론(오늘날 스리랑카)로 유배당했으나 1901년 죄가 풀려 이집트로 돌아왔으며, 1911년 이집트에서 사망했다. 사후 '이집트 독립의 아버지'라고 불리고 있다. [[분류:이집트의 독립운동가]][[분류:이집트의 군인]][[분류:이집트의 정치인]][[분류:1841년 출생]][[분류:1911년 사망]][[분류:파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