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일본의 미제사건]][[분류:헤이세이 시대/살인사건]][[분류:1991년 범죄]][[분류:이바라키현의 사건사고]][[분류:이슬람 근본주의]] [include(틀:사건사고)]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attachment/악마의 시 번역자 피살사건/igarasi.jpg|width=100%]]}}}|| || 피해자 [[이가라시 히토시]] || [목차] == 개요 == 悪魔の詩訳者殺人事件 [[1991년]] [[일본]]에서 일어난 [[악마의 시]] 번역자 피살사건. == 상세 == 1990년 [[쓰쿠바대학]]의 [[조교수]][* 현재 일본 대학 직제에서 준교수에 해당하는 직위로, 일본에서 조교수 직위는 2007년 법률 개정으로 준교수로 대체되었다. 한국 및 미국 대학 직제의 조교수와는 개념이 약간 다르다.]로 있었던 [[이가라시 히토시]](五十嵐一)는 [[살만 루슈디]]의 문제작 《[[악마의 시]]》를 [[일본어]]로 번역했는데 1991년 7월 11일 그가 쓰쿠바대학 건물 내 [[엘리베이터]] 앞에서 정체불명의 인물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의 조사에서 현장에 O형의 혈액과 [[쿵푸]]를 배우는 사람들이 신는 [[중국]]제 쿵푸용 [[신발]] 자국이 발견되었는데 모두 범인의 흔적인 걸로 판명되었다. 하지만 더 이상의 증거는 없었고 범인을 잡을 만한 결정적 단서도 나타나지 않았다. == 범인 및 동기 추정 == 당시 《악마의 시》 때문에 [[이란]] 정부는 살만 루시디와 관계자를 살해하라는 명령을 내린 상태였고 살만 루시디는 [[영국의 법 집행|영국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살아야 했다. 비슷한 시기에 [[이탈리아어]] 번역자인 에토레 카를리올리도 흉기에 찔려 중상을 입는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가라시를 살해한 사람이 이란 정부의 특수요원이거나 [[이슬람 근본주의]] [[테러]] 단체의 일원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미국 중앙 정보국|CIA]]의 전직 요원도 목격되기 쉬운 엘리베이터 앞에서 살해한 것은 특정 목표를 노린 계획적 범행이므로 테러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또 이가라시는 [[무슬림|이슬람교 신자]]는 아니지만 이란에서 생활하면서 [[이슬람교]]를 깊이 이해하고 있던 인물이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이슬람교를 깊이 이해하는 사람이 반(反) 이슬람교적인 악마의 시를 번역한 데 불쾌감과 배신감을 느낀 자가 저지른 테러가 아닌가라는 추측을 하기도 했다. 반면 이 사건이 [[테러]]라는 것에 의혹을 품는 사람들은 반론을 제기했다. 왜 범죄를 은폐하기 쉬운 연구실이 아니라 엘리베이터 앞에서 살인을 저질렀는지 의심스럽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그래서 개인적 원한 관계에 의한 살인일지도 모른다는 의견도 나왔지만 대한민국에서도 [[김정일]]의 처조카이자 [[탈북]]하여 [[백두혈통|김정일 일가]]의 치부를 폭로했던 [[이한영]]이 1997년에 자신의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서 [[이한영 암살 사건|북한 공작원들에게 권총으로 살해당한 적이 있다.]] 정치적 테러는 테러 대상자와 비슷한 행위를 할지도 모르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경고의 의미에서라도 사주한 게 누구인지 직접적인 물증은 찾기 어렵지만 자신들이 했다는 심증이 가도록 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일본 정부]]는 [[이란]]과의 [[외교]]적 마찰을 우려해서 사건 수사를 유야무야 종결시켜 버리는 황당한 짓을 했다(...). 그래서 일각에선 "경찰이 너무 지나치게 이란 정부나 [[이슬람 근본주의]] 테러 단체에만 초점을 둔 것이 진짜 범인을 놓치게 만든 요인이 아닌가"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 기타 == 수사 과정에서 이가라시의 연구실을 수색하던 중 그가 쓴 걸로 보이는 메모가 하나 발견되었다. [[단노우라 전투]]에 대한 사행시였는데 [[일본어]]와 [[프랑스어]]가 섞인 것이었다. 마지막 행에서 "단노우라에서 죽는다"는 내용이 프랑스어로 "계단에서 살해당한다"로 적혀 있어 이가라시는 누군가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지 않았는가 추정할 수 있었지만 범인에 대한 단서는 되지 못했다. 2012년 5월 20일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이 사건을 다뤘다. 피살된 교수에게 수업을 받던 [[방글라데시]] 유학생이 교수에게 경고를 했다고 하는데 교수가 습격당하던 곳에 있었음에도 없었다고 거짓말을 해서 용의자로 의심받았지만 고국으로 돌아간 상태였던 데다 교수 주변 인물만 조사하라는 윗선의 지시 때문에 잡지 못했다고 한다. 실제로 이는 [[주간문춘|주간 분슌]](週刊文春)에서 1998년에 폭로한 [[일본 경찰]]의 극비 보고서의 내용이기도 하다. 다만 서프라이즈에서 방영한 내용과는 달리 주간 분슌의 보도에 의하면 이 유학생은 이가라시 교수의 시체가 발견된 당일 오후에 [[나리타 공항]]을 통해 방글라데시로 돌아갔다고 한다. 문예춘추에 기고된 기사에서는 "국가가 봉인한 살인 사건"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1993년 7월 [[튀르키예]] 번역자 아지즈 네신이 습격당하였으며 [[노르웨이]] 번역자도 습격당했다고 하는데 이후에는 습격 소식이 들어오지 않고 있다. 1998년 이란 정부가 공식적으로 루시디 사건의 종결과 현상금 철회 선언을 한 것이 컸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