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1864년 출생]][[분류:1938년 사망]][[분류:슬로바키아의 정치인]][[분류:가톨릭 사제]][[분류:화폐의 인물]][[분류:질리나 주 출신 인물]] [[파일:Andrej_hlinka.jpg]] Andrej Hlinka [[1864년]]~[[1938년]] [목차] [clearfix] == 개요 == [[슬로바키아]]의 사제, 정치인. == 생애 == 1905년 루좀베로크의 사제가 되었으며 1906년 [[헝가리]] 의회선거에서 슬로바키아의 민족주의 후보들을 지지했다. 결국 [[슬로바키아인]]들을 선동해 [[헝가리]]에 대항하도록 만들었다는 이유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이듬해 5월에 교구민에게 선동적 고별사를 했다는 죄목으로 1년 6개월 형을 추가받게 되었다. 1918년 슬로바키아 인민당의 지도자가 되어 [[체코]]와의 통합을 지지했으나 이듬해 갑자기 통합에 의혹을 품고 슬로바키아 국민투표를 요구하는 외교 문서를 파리 평화회의에 보냈으며 [[토마시 가리크 마사리크]]가 피츠버그 조약에서 약속한 슬로바키아 자치권을 [[체코인]]들이 이행하지 않는다면서 비난했다. 이후 체코와의 관계가 개선되면서 1927년 그는 당 부서기 [[요제프 티소]]가 [[체코슬로바키아]] 정부 직위를 받는 것을 허용한다. 그러나 2년 후 그의 당은 다시 체코에 적대적으로 돌아섰으며 그 당시 흘린카는 다른 당 부서기인 벨라 티카가 헝가리 첩보원 활동으로 반역죄로 기소되었을 때 그의 해임을 거절하기까지 했다. == 사후 == 비록 흘린카 본인은 슬로바키아의 애국자 그 자체였으나 동기 자체는 순수하지 못했으며, 체코에 대해 광적으로 적대감을 보였고 그는 이것이 슬로바키아의 대의명분에 비호의적인 [[독일인]]과 마자르인에게 이용당하고 있다는 것과 체코슬로바키아의 파괴와 연관되어 있음을 알지 못했다. 결국 그가 죽은 이후 체코슬로바키아는 [[나치 독일]]의 침공을 받고 [[뮌헨 협정]]을 통해 주변국에게 영토를 뜯기면서 동시에 사실상 나치 독일의 괴뢰국으로 전락, 이후 [[보헤미아-모라바 보호령]]과 [[슬로바키아 제1공화국]]으로 갈라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