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고려의 인물]][[분류:몰년 미상]] '''安覇''' 생몰년도 미상 [목차] [clearfix] == 개요 == [[고려]] 초의 군인. 중금(中禁)[* 고려시대 [[고려군]]의 [[금군]]을 구성하는 부대 중 하나다.] 소속으로 [[강조(고려)|강조]]의 명령을 받고 [[목종(고려)|목종]]을 암살했다. == 행적 == >일행이 적성현에 이르렀을 때 강조가 상약 직장(尙藥直長) [[김광보]](金光甫)를 보내어 독약을 올렸다. 전왕이 마시려고 하지 않자, 김광보가 따라간 중금(中禁) 안패(安覇)에게 이르기를, >'''"강조의 말이, 능히 독약을 올리지 못하면 중금의 군사로 하여금 [[시해|대사(大事, 비상한 일이니, 여기서는 임금을 죽이는 것)]]를 시행케 하고는 자살한 것으로 알리라고 하였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와 너희들은 모두 [[멸족]]을 당할 것이다.” 하였다.''' >이날 밤 안패 등이 전왕을 시해하고는 자결한 것처럼 알리는 동시에 문짝을 가져다 관(棺)을 만들고 공관(公館)에 임시로 안치하였다. [[태후]]([[천추태후]])는 [[황주]](黃州)로 도망하였다. 달을 넘겨서야 [[현(행정구역)|현(縣)]] 남쪽에서 화장(火葬)하였는데, 능을 [[공릉]](恭陵)이라 하고, [[시호]]는 선령(宣靈), [[묘호]](廟號)는 [[민종]](愍宗)이라 하였다. 신민(臣民)이 통분(痛憤)하지 않는 이가 없었는데, [[현종(고려)|새 임금]]은 이를 알지 못하였다. [[거란]]이 [[거란의 침입|군사를 일으켜 죄상을 묻게 되어서야]] 시해를 당한 줄 알고, 시호를 고쳐 선양(宣讓)이라 하고, 묘호를 [[목종]](穆宗)이라 하였다. >- [[동국통감]] 권15 고려기, 고려 목종 12년, 기유년(己酉年), 1009년 - [[1009년]] 목종은 [[강조의 정변]]에 의해 [[폐위]]된 후 [[충주]]로 떠나게 되었다. 목종 일행이 적성현에 이르렀을 때, 강조는 상약직장 김광보를 보내 독약을 올렸지만 목종은 ~~당연히 억울하게 죽고 싶지 않기에~~ 이를 거부했다. 그러자 김광보는 함께 따라온 안패에게 강조의 명령이라고 ~~[[협박]]~~ 말을 전한다. [[임금]]을 살해하고 자살하는 것으로 꾸미고, 그렇지 않으면 김광보, 안패 등을 모두 멸족시키겠다는 것이다. 당일 밤 안패 등은 목종을 시해하고 이를 [[자살]]한 [[자살로 위장된 타살|것으로 꾸몄다고 한다.]] 이후의 행적은 불명. 목종이 시해당한 후, 현종에 의해서 목종이 복권되긴 했지만 [[미스터리 관련 정보/역사 관련 정보/한국사|목종을 암살한 김광보, 안패가 어떻게 됐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왕을 시역한 대역죄인인만큼 강조 일파에 의해서 [[토사구팽]]됐거나 아니면 현종 즉위 후 [[숙청]]됐던가 [[거란의 침입|거란의 침공]] 과정에서 죽거나 운이 좋았다면 이후 ~~[[듣보잡]]으로~~ 조용하게 살았을 가능성이 있다.] == 대중매체 == * 2009년 ~~[[막장 드라마|막장]]~~ [[드라마]] [[천추태후(드라마)|천추태후]]에서 [[유종근(배우)|유종근]]이 연기했다. 여기서는 [[제2차 여요전쟁]] 때 [[통주 전투]]에서 [[이현운]]과 함께 [[거란]]에게 [[투항]]하면서 [[매국노]] 이미지도 추가되었다. 결국 이현운과 함께 유충정에게 독살당하면서 사망한다. * 2023년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에서는 목종의 최후가 짧게 축약되면서[* 암살당했다는 점만 동일하고 실제 역사와 달리 목종이 독약을 거부하는 장면이 생략되고 밤이 아닌 대낮에 죽는 것으로 나왔으며, 목종을 자살한 것처럼 꾸미는 것 또한 생략되었다.] 안패와 김광보는 나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