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보편 칼리파)]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0000, #000000 20%, #000000 80%, #000000);" '''{{{#FFF,#FFF 아바스 왕조 제23대 칼리파}}}[br]{{{#FFF,#FFF {{{+1 알 무티}}}[br]المطيع لله}}}'''}}}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MansurISamanidCoinHistoryofIran.jpg|width=100%]]}}} || || {{{#FFF,#FFF '''이름'''}}} ||아부 알 카심 알 파딜 이븐 알 무크타디르[br]أبو القاسم الفضل بن المقتدر || ||<|2> {{{#FFF,#FFF '''출생'''}}} ||913/4년 || ||[[아바스 왕조]] [[바그다드]] || ||<|2> {{{#FFF,#FFF '''사망'''}}} ||974년 10월 12일 (향년 60세) || ||[[아바스 왕조]] 다이르 알 아쿨 || ||<|2> {{{#FFF,#FFF '''재위 기간'''}}} ||{{{#000 아바스 칼리파}}} || ||946년 1월 29일/3월 9일 ~ 974년 9월 5일 '''(28년)''' || || {{{#FFF,#FFF '''전임자'''}}} ||[[알 무스탁피]] || || {{{#FFF,#FFF '''후임자'''}}} ||[[알 타이]] || || {{{#FFF,#FFF '''별명'''}}} ||알 무티 알라(المطيع لله: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 || || {{{#FFF,#FFF '''부모'''}}} ||[[아버지]] : [[알 무크타디르]][br][[어머니]] : 마슈알라 || || {{{#FFF,#FFF '''종교'''}}} ||[[이슬람]] [[수니파]] || [목차] [clearfix] == 개요 == [[아바스 왕조]] 23대 [[칼리파]]. == 생애 == 913년 또는 914년 [[바그다드]]에서 아바스 왕조 18대 칼리파 [[알 무크타디르]]와 슬라브족 출신의 여노예 마슈알라의 아들로 출생했다. 944년 9월 [[알 무타키]]가 튀르크 장군 투준에게 폐위된 후, 알 무크타디르의 남은 아들들 중 나이가 가장 많았던 그가 유력한 왕위 계승자로 거론되었다. 그러나 투준은 [[알 무크타피]]의 아들인 [[알 무스탁피]]를 새 칼리파로 선임했다. 그 후 그는 목숨이 위태로워졌다. 알 무스탁피는 알 무크타디르의 남은 자식들을 잠재적인 경쟁자로 여기고 박해했는데, 특히 어렸을 때 타히리드 궁전에 머무는 동안 앙숙이었던 그를 잡아 죽이려 들었다. 그는 은신처에 숨었고, 알 무스탁피는 그의 집을 불태웠다. 946년 1월 29일 또는 3월 9일, [[부와이 왕조]]의 무이즈 앗 디올라가 알 무스탁피를 체포해 실명형에 처한 뒤 폐위했다. 부와이 왕조는 [[시아파]] 정권이었지만, 무이즈는 시아파 칼리파를 세운다면 바그다드 주변의 [[수니파]] 세력이 가만두지 않는다는 걸 잘 알았다. 그래서 은신처에 숨어있던 그를 데려와서 칼리파로 선임했다. 물론 실권은 전혀 없었고, 무이즈가 통치를 행사했다. 946년 여름 [[함단 왕조]]군이 바그다드 동부 지역을 잠시 점령했을 때, 그는 서부 지역의 한 모스크에 가택 연금되어 부와이 왕조에 충성을 맹세할 때까지 석방되지 않았다. 또한 무이즈가 바그다드 남쪽의 반군에 대항하여 원정을 떠날 때 강제로 따라가야 했다. 그의 통치 기간 동안, 바그다드 시민들은 시아파의 관습을 강요받았다. [[아슈라]] 때 [[후세인 이븐 알리]]의 죽음을 기려야 했고,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가 예언자의 진정한 후계자임을 인정해야 했다. 또한 [[아부 바크르]], [[우마르]], [[우스만]] 등 3명의 정통 칼리파와 [[아이샤 빈트 아비 바크르]]를 저주하는 플랜카드가 도시의 모든 모스크 벽에 붙었다. 수니파였던 시민들은 도저히 참지 못하고 폭동을 일으켜 플랜카드를 모조리 파괴하고 궁궐로 쳐들어가 약탈을 벌였지만, 부와이군에 의해 진압되었다. 그는 민정, 군정, 외교 등 거의 모든 권한을 박탈당하고 종교 활동을 수행하고 아바스 가문의 구성원들을 감독하는 역할만 맡았다. 칼리파의 수석 비서는 더이상 [[와지르]]로 불리지 않고 카티브(비서)로 일컬어졌으며, 카티프는 칼리파의 재산을 관리하는 일만 맡았다. 신하에게 직위를 내리고 판사와 배심원을 선임하는 등의 인사는 부와이 왕조의 지도자가 먼저 결정한 뒤 그가 명목상 승인하는 형태로 이뤄졌다. 그렇게 부와이 왕조에게 권력을 전부 내주고 24년간 재위하던 974년 8월 1일, 사부타킨이 이끄는 튀르크 용병대가 쿠데타를 일으켜 부와이 왕조군을 축출하고 바그다드를 장악했다. 그는 부와이 일족과 함께 바그다드를 떠났지만, 도중에 튀르크군에게 붙잡혀 궁궐에 강제로 끌려왔다. 974년 9월 5일 뇌졸중에 걸려 오른팔이 마비되어서 칼리파로서 제 역할을 못한다는 이유로 폐위되었고, 아들 [[알 타이]]가 새 칼리파로 등극했다. 그 후 알 타이와 함께 사부타킨의 부와이 왕조 원정에 동행하다가 974년 10월 12일 데이르 알 아쿠울에서 사망했다. 사후 바그다드 교외의 알 루사파에 자리잡은 외할머니 샤하브의 영묘에 합장되었다. [[분류:아바스 칼리파]][[분류:974년 사망]][[분류:바그다드 출신 인물]][[분류:폐위된 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