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러시아의 군인]][[분류:1694년 출생]][[분류:1767년 사망]] [[파일:800px-Alexandr_Borisovich_Buturlin.gif]] [목차] == 개요 == (граф) Александр Борисович Бутурлин 러시아군 원수. [[7년 전쟁]] 시기 러시아군을 이끌고 프로이센군과 대적했다. == 일생 == 부울린은 1694년 6월 28일 러시아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문은 13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명문 귀족 집안이었다. 그는 1716년에 새로 설립된 해군사관학교에 들어가 4년간 항해, 펜싱, 외국어 등을 공부했고 1720년에 졸업한 후 [[표트르 대제]]의 측근이 되어 1722년에서 1723년까지 페르시아에 잠입해 여러 비밀 임무를 수행했다. 이후 상트페테르부르크 궁정의 시종으로 임명된 그는 옐리자베타 페트로브나 공주를 모셨다. 공주는 그를 무척이나 총애했고 곧 궁정 내에서는 당시 17세인 옐리자베타가 부울린과 성관계를 맺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이에 [[표트르 2세]]는 그를 우크라이나로 유배시키는 조치를 취했다. 1730년 [[안나 이바노브나]] 여제가 통치를 시작하자 정계에 복귀한 부울린은 뮈니히 장군 휘하에 들어가 오스만 제국군과 맞서 싸웠으며 1735년 스몰렌스크 주지사로 임명되었다. 1741년 그를 무척이나 총애했던 옐리자베타 페트로브나 공주가 여제로 등극하자, 부울린은 [[소러시아]]의 총독으로 파견되어 짧은 기간 동안 리보니아를 통치했다. 1742년 12월 12일, 부울린은 모스크바 방위군 통수권자로 임명되어 1744년까지 이 직책을 유지했다. 1756년 야전 사령관으로 임명된 부울린은 1760년 전역 때 러시아군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그는 동프로이센과 슐레지엔에서의 군사 작전을 진행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오스트리아 장군들과 끊임없는 갈등을 빚었다. 오스트리아 외교관은 이런 부울린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그의 유일한 장점은 잘생긴 외모다. 1762년 6월 9일, 부울린은 [[표트르 3세]]에 의해 모스크바 총독으로 임명되어 차르의 대관식을 준비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러다가 [[예카테리나 2세]]가 정변을 일으켜 황위를 찬탈했지만 그는 163년까지 자신의 직위를 유지했다. 그러나 예카테리나 2세의 측근들에 의해 정계에서 축출된 그는 말년을 쓸쓸히 보내다가 1767년에 사망했다. 향년 73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