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Albin Wolf cock.png]] '''알빈 볼프(Albin Wolf : 1920. 10. 28~1944. 4. 2)''' [[분류:1920년 출생]][[분류:1944년 사망]] [목차] == 비행병 파일럿 == 2차 세계 대전에 [[독일 공군]]의 [[전투기]] 조종사로 활약하면서 적기 144대를 격추한 [[에이스]] 파일럿이며 그 무공으로 [[철십자 훈장|곡엽기사철십자 훈장]]을 서훈받은 알빈 볼프는 100대 이상의 전과를 세운 다른 에이스들에 비하면 참전이 늦은 편이다. [[1942년]] 5월, 비행병이 된 알빈 볼프 [[하사]]는 [[하네스 트라우트롭트]](Hannes Trautloft) [[대령]]이 지휘하고 있던 제54전투항공단([[JG 54]]) "그륀헤르츠" 제6비행중대에 배속되었다. [[1940년]] 늦게 공군에 입대한 그는 거의 2년 동안 훈련을 받았던 탓에 숙련도에는 문제가 없었다. == 마의 8월 == 자대에 배치되자마자 한 달만에 [[러시아]] 방면으로 전개하여 [[독소전]]에 참전하게 된 그는 어리숙한 [[소련]] 조종사들이 모는 구식 전투기들을 상대로 학살을 시작했고, 14개월 후인 [[1943년]] 8월 3일에는 격추수가 40대를 헤아리게 된다. 8월은 알빈에게 있어 가장 교전이 잦았던 때였는데, 이 한 달 동안 그는 하루에도 서너 차례, 심하면 7회까지 출격을 거듭하면서 연거푸 소련 공군기를 격파해냈다. 9월 4일까지 78기라는 스코어를 기록한 것을 보면, 8월은 그가 지난 14개월 동안 쌓은 전공을 단 1개월만에 더하게 된 시기였다. [[소위]]가 된 알빈 볼프는 11월에는 100대의 벽을 돌파했는데, 이것은 독일 공군에서 59번째 대기록이었다. 11월 22일에는 117기 격추의 공적으로 기사철십자 훈장을 수여받았다. 12월 29일에 부대 이동을 위해 탑승기를 몰고 장거리 비행을 마치고 착륙하다가 사고를 당한 그는 부상을 입고 군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게 된다. == 눈먼 포탄에 당한 에이스 == 두 달 여 후인 [[1944년]] 3월 11일에 자신이 편대원으로 근무하던 6중대의 중대장에 취임하면서 전선에 복귀했다. 돌아온 부대는 지휘관이 [[안톤 마더]] 중령으로 바뀌어 있었고, 사용 기종도 [[Fw 190]]A-4에서 A-6로 교체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에 개의치 않고 3월 23일까지 알빈 볼프 소위는 135번째 승리를 거두게 된다. 동시에 이 격추는 JG 54 전체를 통틀어 7,000대째 격추였다. 4월 2일에도 출격에 나선 그는 [[동부전선]]의 프스코프(Псков) 남동쪽 상공을 초계 비행하던 도중에, 그가 타고 있던 Fw 190A-6(Werknummer 551142)에 대공포탄이 직격하고 말았다. [[폭격기]]도 중구경 [[대공포]]에 직격 당하는 일은 흔치 않았는데 전투기로 고속 순항 중에 피격된 것을 보면, 알빈 볼프는 실력이 문제가 아니라 그 역시 하늘에서 진 다른 에이스들처럼 [[무운]]이 다한 것이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알빈 볼프가 전사한 후, [[중위]] 계급과 곡엽기사철십자 훈장이 추서되었다. == 서훈 == [[파일:attachment/BmEKII.jpg|width=40]]2급 [[철십자 훈장]] (1942. 10. 1) [[파일:attachment/BmEKI.jpg|width=40]]1급 철십자 훈장 (1943. 1. 22) 공군 명예컵 (1943. 4. 30) [[독일 십자훈장|독일 황금십자장]] (1943. 10. 17) [[파일:attachment/BmRKEL.jpg|height=50]]기사철십자 훈장 (1943. 11. 22) 곡엽철십자 훈장 (1944. 4. 27) [include(틀:2차 세계대전/전투기 에이스 31~50위)] [[분류:제2차 세계 대전/군인]][[분류:에이스 파일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