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웨식스 국왕]][[분류:웨식스 가문]][[분류:834년 출생]][[분류:860년 사망]] [include(틀:역대 잉글랜드 국왕)] ||||<:> [[파일:aethelbald.jpg|width=400]] |||| || '''이름''' ||웨식스의 애설볼드[br](Æthelbald of Wessex)|| || '''생몰년도''' ||834년경 ~ 860년 12월 20일|| || '''재위기간''' ||858년 1월 13일 ~ 860년 12월 20일|| || '''종교''' ||'''[[기독교|기독교(가톨릭)]]'''|| [[고대 영어]]: Æþelbald (애델발드) [[영어]]: Æthelbald (애설볼드) [[라틴어]]: Ethelbaldus (에텔발두스) [목차] == 개요 == [[웨식스|웨식스 왕국]]의 제22대 국왕이다. == 상세 == 선왕인 [[애설울프]]와 첫 번째 아내 사이의 차남으로 834년 태어났다.[* 장남은 아버지 [[애설울프]]보다도 먼저 사망했다.]840년대부터 부왕의 통치 활동에 참여했으나, 정치 활동에 비해 재위 기간은 858~860년의 3년 정도에 불과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일찍 사망했기 때문이다. 그의 아버지인 애설울프 왕이 855년에 [[로마]]로 순례 여행을 떠났는데, 그동안 [[웨식스]]를 대리 통치했다. 아버지 [[애설울프]]가 없는 동안 애설볼드, 혹은 셔본의 대주교, 혹은 서머셋의 백작, 아니면 이 셋 모두가 왕의 귀환을 막으려는 음모를 꾸몄다는 설이 있다. 애설볼드가 이 음모에 가담했을 가능성은 크다. 애설울프가 여행 중에 [[서프랑크 왕국]]의 대머리 왕 [[샤를 2세]]의 딸과 결혼했기 때문이다. 강성한 [[서프랑크 왕국]]의 공주인 그의 새엄마가 아들을 낳을 경우, 애설볼드보다 더 적합한 후계자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결혼 당시 왕비의 나이는 만 12세였다. [[웨식스]]로 돌아온 [[애설울프]]는 반란을 접했으나 아들과 싸우지 않는 쪽을 택했고, 애설볼드가 [[웨식스]]를 계속 통치하도록 놔두며, 자신은 [[켄트 왕국|켄트]]와 다른 동부 지역을 다스렸다. 858년 부왕 [[애설울프]]가 사망하자 애설볼드는 [[웨식스]]의 국왕이, 그의 동생 [[애설버트]]는 [[켄트 왕국|켄트]]의 국왕이 되었다. 아버지가 사망한 후에 그의 왕비가 가진 [[서프랑크 왕국]] 공주로서의 지위가 너무 탐이 났기에 애설볼드는 엄청난 일을 감행한다. 왕비, 즉 그의 새 어머니와 결혼한 것이다. 당연히 이에 대한 엄청난 반대가 있었다. 대주교는 애설볼드가 죽었을 때 그와 그의 통치에 대해 악평을 했을 정도였다. 860년 12월 20일 애설볼드는 도셋에서 사망했고, 왕위는 그의 동생인 [[애설버트]]가 이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