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개요 == 애절양(哀絶陽). [[양물]][陽]을 자른[絶] 것을 슬퍼하다[哀]. 다산 [[정약용]]이 지은 한시(漢詩)로 조선 후기 백성이 [[삼정의 문란|과도한]] [[군포(조세 제도)|군정]]으로 인한 고통을 못 견뎌 [[거세|음경(성기)을 자른 것을]] 보고 슬퍼하며 지은 시라고 한다. 당시 조선 삼정의 문란이 얼마나 막장으로 심했는가를 잘 알 수 있다. 역사 시험에는 [[삼정의 문란]]이나 [[세도정치]] 파트에서 지문으로 많이 출제된다. 문학 시험에선 [[정약용|같은 작가]]가 지은 <탐진촌요>뿐만 아니라 [[고려가요]] <[[청산별곡]]>, 익재 [[이제현]]의 <사리화>, 사설시조 <두터비 파리를 물고> 등 지배층의 수탈과 관련한 작품들과 묶여 언급되는 경우가 많다. == 내용 == ||蘆田少婦哭聲長(노전소부곡성장)|| 갈밭마을 젊은 아낙 길게 길게 우는 소리 || ||哭向縣門號穹蒼(곡향현문호궁창)|| 관문 앞 달려가 통곡하다 하늘 보고 울부짖네 || ||夫征不復尙可有(부정불복상가유)|| 출정 나간 지아비 돌아오지 못하는 일 있다 해도 || ||自古未聞男絶陽(자고미문남절양)|| 사내가 제 양물 잘랐단 소리 들어본 적 없네 || ||舅喪已縞兒未澡(구상이호아미조)|| 시아버지 삼년상 벌써 지났고 갓난아인 배냇물도 안 말랐는데[* 백골징포(白骨徵布), 황구첨정(黃口添政)] || ||三代名簽在軍保(삼대명첨재군보)|| [[삼정의 문란#s-3.2|이 집 삼대 이름 군적에 모두 실렸네]] || ||薄言往愬虎守閽(박언왕소호수혼)|| 억울한 하소연 하려 해도 관가 문지기는 호랑이 같고 || ||里正咆哮牛去早(이정포효우거조)|| 이정은 으르렁대며 외양간 소마저 끌고 갔다네 || ||磨刀入房血滿席(마도입방혈만석)|| 남편이 칼 들고 들어가더니 피가 방에 흥건하네 || ||自恨生兒遭窘厄(자한생아조군액)|| 스스로 부르짖길 "아이 낳은 죄로구나!" || ||蠶室淫刑豈有辜 ( 잠실음형기유고 ) || [[궁형|누에 치던 방에서 고환 까는 형벌]]도 억울한데 || ||閩囝去勢良亦慽 ( 민건거세양역척 ) || 민나라 자식의 거세[* 건(囝)이란 한자는 민(현 [[중국]] [[푸젠성]] 일대)나라 말로 자식을 가리키는 말을 표기하기 위해 만들어진 한자다. [[송나라]] 오처후가 지은 청상잡기(靑箱雜記)에는 [[당나라]]에서 민나라 자식을 환관으로 만드는 풍습을 풍자하여 고황(顧況)이 지은 애가 《애건》(哀囝)이 나온다. [[측천문자]]로 달 월(月)을 대체하는 囝과는 별개의 글자다.]도 진실로 또한 슬픈 것이거늘 || ||生生之理天所予 ( 생생지리천소여 ) || 자식을 낳고 사는 이치는 하늘이 준 것이요 || ||乾道成男坤道女 ( 건도성남곤도여 ) || 하늘의 도는 남자 되고 땅의 도는 여자 되는 것이라 || ||騸馬豶豕猶云悲 ( 선마분시유운비 ) || 거세한 말과 거세한 돼지도 오히려 슬프다 할만한데 || ||況乃生民思繼序 ( 황내생민사계서 ) || 하물며 백성이 후손 이을 것을 생각함에 있어서랴! || ||豪家終世奏管弦(호가종세주관현)|| 부자집들 일 년 내내 풍악 울리고 흥청망청 || ||粒米寸帛無所損(립미촌백무소손)|| 이네들 한 톨 쌀 한 치 베 내다바치는 일 없네 || ||均吾赤子何厚薄(균오적자하후박)|| 다 같은 백성인데 이다지 불공평하다니 || ||客窓重誦鳲鳩篇(객창중송시구편)|| 객창에 우두커니 앉아 시구편[* [[시경]]에 수록된 시편으로, '[[뻐꾸기]] 뽕나무에 앉았으니, 새끼는 일곱 마리라(鳲鳩在桑, 其子七兮)' 라는 구절로 시작한다. 뻐꾸기는 새끼에게 음식을 먹일 때 항상 일정한 순서대로 공평하게 하므로 군자도 이와 같아야 한다는 내용이다.]을 거듭 읊노라 || == 기타 == 영화 [[자산어보(영화)|자산어보]]에 이 시를 모티브로 한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이 시는 정약용이 쓴 것이고 영화 [[자산어보(영화)|자산어보]]는 정약용의 형인 정약전의 [[자산어보]]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분류: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