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몰년 미상]][[분류:후삼국시대/인물]] [include(틀:후삼국시대 호족들)] [목차] == 개요 == 梁吉/良吉 생몰년도 미상 [[통일신라]] 말기([[후삼국시대]]) 899년 북원([[원주시|원주]])의 호족. [[한반도]] 중부의 패권을 가지고 국원(충주) 등 30여 성을 장악한 대호족으로서 한반도 중부세력의 패권을 가진 세력가였다. 투항해 온 궁예를 거느리고 세력을 확장하였는데 황해도 토호 세력이었던 [[태조(고려)|왕건]]의 항복을 받아 한 때 그의 영토는 동해와 서해를 연결할 정도였다. 그러나, 부하인 [[궁예]]와 패권을 다퉜으나 [[비뇌성 전투]]에서 패함으로써 몰락한다. == 생애 == [[신라]] 말기인 [[진성여왕]] 시대 [[왕실]]의 부패로 나라가 혼란에 빠지고 [[자연재해]]가 잇달아 일어났다. 889년 국고가 텅 비게 되자 전국에 [[세금]]을 독촉하는데 이 사건을 계기로 [[상주시|상주]]에서 [[원종(신라)|원종]]과 [[애노]]의 난을 시작으로 전국에 반란군이 잇달아 일어나게 되었다. 양길은 5소경 중 하나로 당시 큰 도시였던 북원경을 기반으로 한 호족인데 세력이 컸는지 훗날 [[후고구려]]의 왕이 되는 궁예도 892년에 양길의 [[부하]]가 된다. [[삼국사기]] [[견훤]]전에 의하면 견훤이 [[광주광역시|무진주]]를 차지하고 칭왕할 무렵인 892년 양길에게 관직을 주어 비장(裨將)으로 삼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892년 이후에는 견훤과 양길 간에 별다른 기록이 없는 점과 활동 지역도 달라서[* 견훤은 무진주 일대, 양길의 경우 한주와 삭주 남부] 양길이 무시했을 가능성이 높다. 894년 양길은 궁예에게 큰 규모의 병력을 맡겨 지금의 [[강원도]] 지역 대부분을 [[정벌]]하도록 했고 궁예는 기대에 부응해 연전연승을 거두며 급기야 [[강릉시|명주]]까지 제압하고야 만다. 그 소식을 들은 [[태조(고려)|왕건]]을 비롯해 지금의 [[개성시]], [[황해도]], [[평안도]] 쪽의 [[패서]] 호족이 잇따라 투항하였다. 그러나 궁예는 자신의 힘으로 차지한 강원도 지역을 기반으로 이후 [[장군]]을 자칭하며 자립해 양길에 맞섰고 양길은 899년[* 삼국사기 궁예전은 897년, 삼국사기 신라본기는 899년 7월의 일로 기록하고 있다.] 궁예와 [[비뇌성 전투]]에서 싸우나 대패하고 만다. 여기서 양길이 죽었다는 기록은 없지만 900년 왕건이 궁예의 명령을 받아 [[광주시|광주]], [[충주시|충주]], [[청주시|청주]] 등 양길의 본거지 일대를 일거에 정벌했고 이 때 남아있던 양길의 잔여 세력이 완전히 무너진 것으로 보인다. == 기타 == 공교롭게도 [[후삼국시대]] [[군주]]들인 [[궁예]], [[견훤]], [[태조(고려)|왕건]]과 모두 인연이 있는 인물이다. 다만 왕건이 양길의 잔여 세력을 정벌할 시점에 양길이 살아있었는지는 불명. 궁예와의 전투 이후 양길과 그 세력은 몰락했지만 기록상 북원경을 비롯해 중원경 등 30여 성(또는 10여 성)을 차지하고 있던 강력한 호족이었다. == 대중매체에서 == === [[KBS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 === [[파일:양길(태조 왕건).png]]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양길(태조 왕건))] === [[만화]] <태조 왕건> === 궁예와 결투를 벌여서 패배한 후 깨끗하게 [[자살]]한다. 다른 어린이용 만화나 왕건 위인전에서도 [[궁예]]와 결투를 하다가 살해당했다는 묘사가 은근히 자주 나온다. 아마 궁예의 무서움과 용맹함을 강조하기 위해서인 듯. === [[김성한(작가)|김성한]]의 소설 <왕건> === 궁예의 스승인 허공 스님의 부탁 덕분에 궁예는 비교적 쉽게 양길 휘하에서 한자리 차지하게 된다. 소설의 양길은 큰 비전도 없고 큰 공을 세운 궁예에게 그만한 상도 주지 않는 쩨쩨한 인물이지만, 그래도 각지에서 장군이라 칭하며 착취를 일쌈는 건달들이나 각종 인간쓰레기들과 달리 호인에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은 있는 인물로 묘사된다. 양길의 마지막 모습을 본 왕건은 그가 순박한 성품을 지녔다고 평했다. 비뇌성 전투 이후 왕건이 북원성에 쳐들어오자, 양길은 천운이 기울었는데 더이상 희생은 늘여선 안된다며 군대를 해산해 고향으로 돌려보내고선 자신은 동생을 비롯한 일가 몇몇과 함께 자결하고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