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진서)] ------ [include(틀:강좌팔달)] 羊曼 (274 ~ 328) [목차] == 개요 == [[서진]]과 [[동진]] 시대 인물로 자는 조연(祖延). 연주 태산군 남성현 출신의 명사였으며, [[양호(삼국지)|양호]]의 종손자다. == 생애 == 어린 시절부터 명성이 높아 주와 조정으로부터 부름을 받았으나 관직에 나아가길 거부했다. [[영가의 난]]이 발발하자 장강을 넘어 강동으로 피신했고, [[동진]]의 [[진원제|사마예]]는 그를 진동참군으로 삼았다가 승상주부로 옮겨 국가의 기밀을 관리하게 했다. 그 후로도 황문시랑, 상서이부랑, 진릉태수를 역임하던 중 착오로 공무를 망쳐 면직되었다. 양만은 [[광일]], [[호무보지]] 등 자신처럼 영가의 난을 피해 강동으로 내려온 명사들과 모여 술을 마시며 어울리니, 동진의 사람들은 이들 모임을 가리켜 '팔달(八達)'이라 칭했다. [[왕돈(동진)|왕돈]]은 양만을 등용하여 자신의 우장사로 삼았지만 왕돈의 역심을 눈치채고 있던 양만은 매일 일부러 술만 들이부었다. 왕돈은 양만의 명성을 존중했으나 인사불성 상태인 그에게 중요 업무를 맡기지 않아 훗날 왕돈 사후 그 세력이 망했을 때 연루되지 않고 화를 면할 수 있었다. 326년, [[진성제|성제]]가 양만을 단양윤에 임명했다. 그로부터 2년 후, [[소준]]이 반란을 일으켜 황궁으로 들이닥쳤을 때, 조정에서는 양만에게 전장군을 더해 문무관원들을 이끌고 운룡문을 지키도록 했다. 그러나 양만의 부대만으로는 이미 기울어진 전세를 막기엔 역부족이었고 결국 반란군에게 대패당해 뿔뿔이 흩어졌다. 누군가가 도망치면서 양만에게도 소준을 피해 도망치라 권했지만, 양만은 "조정이 무너졌건만 내 어찌 살길 바라겠는가?"라며 도망치길 거부해 소준에게 잡혀 처형되었다. 소준이 토벌된 이후 성제에 의해 태상으로 추증되었다. [[분류:서진의 인물]][[분류:동진 및 오호십육국시대/인물]][[분류:274년 출생]][[분류:328년 사망]][[분류:태산 양씨]][[분류:타이안시 출신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