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개요 == ||<-4> '''[[고사성어|{{{#white 고사성어}}}]]''' || || {{{+5 '''[[良]]'''}}} || {{{+5 '''[[藥]]'''}}} || {{{+5 '''[[苦]]'''}}} || {{{+5 '''[[口]]'''}}} || || 어질 '''양''' || 약 '''약''' || 쓸 '''고''' || 입 '''구''' || 좋은 약이 입에 쓰다는 뜻으로 《[[한비자#s-2|한비자]]》에서 유래한다. 좋은 약은 맛이 쓰지만 몸에 이로운 것처럼, 바른 말은 귀에 거슬리지만 받아들이면 이롭게 된다는 의미이다. == 상세 == >좋은 약은 입에 쓰지만 지혜로운 자가 권면하여 마시게 하는 것은 몸에 들어가면 자기 병을 낫게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충성스런 말은 귀에 거슬리지만 현명한 군주는 들어주니, 공을 이룬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 >夫良藥苦於口而智者勸而飲之知其入而已已疾也 忠言拂於耳而明主聽之知其可以致功也 >---- >한비자,,,韓非子,,, 외저설좌상,,,外儲說左上,,, [[https://ctext.org/library.pl?if=en&file=55299&page=87|#]] 지혜로운 이는 좋은 결과를 내다보기에 당장의 어려움을 개의치 않듯이, 현명한 통치자도 충언을 가려내면 뜻한 바를 이룰 수 있음을 가리킨다. [[초한전쟁#s-3.3|초한전쟁]] 초기, [[진(영성)|진나라]]의 도읍 [[셴양시|함양]]에 입성한 [[고제(전한)|유방]]은 화려한 제보,,,財寶,,,에 만족하여 계속 머물고 싶었던 탓에, 측근 [[번쾌]]가 도성,,,都城,,,을 벗어나야 한다고 간했지만 듣지 않았다. 책사 [[장량(전한)|장량]]이 한비자의 경구를 인용하며 재차 간하자 비로소 이를 따랐다. [[고제(전한)/생애#s-2.6|이 때의 결정]]으로 인해 [[관중#s-4|관중]] 지역은 초한전쟁 기간 동안 유방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https://ctext.org/library.pl?if=en&file=56914&page=107|사기 유후세가]] 「良曰... 忠言逆耳利於行毒藥苦口教於病」] == 여담 == * [[전한]] 시대의 학자 [[유향]]이 편찬한 《[[설원]]》에는 [[공자]]의 가르침으로 기술되었다. 충언을 가려낸 군주로서 [[주나라]]를 건국한 [[무왕(주)|무왕]]을 예로 들면서 [[상나라]]의 마지막 군주 [[제신|주왕]]과 비교했다. 또한 가족 및 교우 관계도 이와 같다고 적용의 범위를 확장시켰다.[* [[http://db.cyberseodang.or.kr/front/alphaList/BookMain.do?bnCode=jti_3a0101&titleId=C310&compare=false|설원 정간]] 「孔子曰良藥苦於口利於病 忠言逆於耳利於行 故武王諤諤而昌紂嘿嘿而亡... 故無亡國破家悖父亂子放兄棄弟狂夫淫婦絶交敗友」] * [[위(삼국시대)|위나라]]의 학자 [[왕숙]]이 편찬한 《공자가어,,,孔子家語,,,》에도 같은 내용이 실려있다. 다만 상나라를 건국한 [[탕왕]]과 [[하나라]]의 마지막 군주 [[걸왕]]을 예시로 추가했다.[* [[http://db.cyberseodang.or.kr/front/alphaList/BookMain.do?bnCode=jti_3a0701&titleId=C111&compare=false|공자가어 육본]] 「孔子曰 良藥苦口而利於病 忠言逆耳而利於行 湯武以諤諤而昌 桀紂以唯注唯而亡」] * [[당나라]]의 학자 사마정,,,司馬貞,,,이 편찬한 《사기색은,,,史記索隱,,,》에 따르면 외저,,,外儲,,,는 현명한 군주가 신하의 언행을 판단하여 상벌을 주는 것을 의미한다.[* [[https://ctext.org/library.pl?if=en&file=28991&page=32|한비자집해 외저설좌상 제32]] 「先愼曰 索隱云 外儲 言明君觀聽臣下之言行以斷其賞罰 賞罰在彼 故曰 外也」] [[분류:고사성어]] [[분류:춘추전국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