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수당시대/인물]][[분류:571년 출생]][[분류:613년 사망]][[분류:웨이난시 출신 인물]][[분류:살해된 인물]][[분류:날붙이에 죽은 인물]] [include(틀:수 반란 지도자)] [목차] == 개요 == 楊玄感 (571년[* [[산시성(섬서성)|산시성]] [[웨이난시]]] ~ 613년[* [[허난성]] [[뤄양시]]]) [[수나라]]의 반란자. [[양소(수나라)|양소]]의 아들. == 생애 == 589년에 의동삼사가 되었고 606년에 양소가 죽자 작위를 계승해 초공이 되었으며, 610년에 [[장형(수나라)|장형]]과 설도형이 억울하게 죽었다는 이야기를 하자 이 말을 [[양제(수)|수양제]]에게 상주했다. 양현감은 날쌔고 용감하면서 말타기와 활쏘기를 잘하고 책 읽기를 좋아했으며, 붙임성이 좋아 이름이 알려진 인사 대부분이 그와 사귀었으며, 특히 [[이밀]]과 잘 지냈다. 양현감은 아버지 [[양소(수나라)|양소]]가 [[양제(수)|수양제]]의 시기를 받고 죽은 것을 알았으므로 항상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예부상서를 지내다가 613년에 [[양제(수)|수양제]]가 [[고구려]] 원정을 계획하자 여양에서 운반하는 일을 감독하던 양현감은 [[뤄양시|동도]] 근처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양현감은 동도를 포위했지만 [[번자개]]의 방비로 인해 함락하지는 못했으며, 대신 위문승과 낙수에서 여러 차례 싸워서 그를 격파했다. 양현감은 매번 싸울 때마다 사졸들보다 솔선해 향하는 곳마다 부러뜨리고 무너뜨렸으며, 워낙 용력이 워낙 빼어나 '''[[항우]]의 재래'''라고까지 불리기도 했다. 실제로 진압군과 싸웠을 때 최전선에서 직접 창을 휘둘렀으며 그가 외친 '살([[殺]])[* 현대 중국어로는 'shā'로 발음되며 [[중고한어]] 기준으로는 발음이 달랐을 것이다. 의미는 죽이라는 것.]'이라는 외침 때문에 전쟁이 끝나고도 요즘 말로 [[PTSD]]에 시달린 병사들이 많았다고 한다. 또한 지휘관으로서도 훌륭하여 부하들을 위로하면서 기쁘도록 잘 했으니 모두 죽을 힘을 다해서 싸웠다. 이 일로 인해 매번 싸울 때마다 대부분 승리해 무리들이 많아져서 10만 명에 이르렀다. 하지만 굴돌통이 이끄는 수나라의 원군이 도착하고 [[번자개]]의 공격으로 여러 차례 패하면서 불리하자 동도의 포위망을 풀고 동관에 이르러 동도를 깨뜨렸으니 관서를 빼앗을 것이라 선언했다. 홍농에 도착해 양지적을 공격했지만 3일 동안 싸워서 함락하지 못했으며, [[우문술]], [[위문승]], [[내호아]], [[굴돌통]] 등이 추격해 황천원에서 따라잡힌다. 양현감은 하루에 세 번 패하고 8월 1일에 동두원에 진을 치다가 여러 군대의 공격을 받아 패하면서 상락으로 도망갔다가 추격하던 [[기병]]이 도착하자 그들을 큰 소리로 꾸짖어 도주하게 했으며, 가노수에 도착해 동생 양적선과 함께 도주하다가 면하지 못할 것을 알고 [[양적선]]에게 자신을 죽이라고 해 양적선이 칼을 빼서 양현감을 죽였다. 양현감의 머리는 3일 동안 낙양 거리에 [[효수]]되고 시체는 갈가리 찢어발겨진 것도 모자라 또 다시 저며서 불태운 후 재를 흩날렸다고 <<[[수서]]>>에 기록되어 있다. 그뿐 아니라 사서에 이름이 삭제되는 처벌도 받아 당시의 공식문서에 기록된 그의 이름은 효(梟)[* 올빼미]라는 글자로 대체되었다고 한다. == 대중매체에서 == * 2006년 [[SBS]] 드라마 [[연개소문(드라마)|연개소문]]에서는 배우 [[이진우(배우)|이진우]]가 연기했다. 역사대로 [[양제(수)|양제]]가 고구려 원정을 떠난 사이 반란을 일으켰으나[* 특히 아버지 양소가 황제에 의해 독살된 것도 모자라 장례를 치를 때 양제가 문상을 와서는 고인드립에 잔치까지 벌인 것을 본 것도 있었다.(그 이전에는 빈소에 찾아온 사람이 곡사정 뿐이었으며 당시 황제가 양소의 빈소에는 아무도 가지 말라고 명한 상황에서 그나마 곡사정이 와준 것이다.)] 이는 동지들과 상의없이 혼자 성급하게 벌인 일로 묘사된다. 이 때문에 극중 인물들에게 그릇이 작고 미덥지 못하다며 까이기만 한다. 심지어 반란군을 진압하는 조정 측도 양현감보다는 그의 심복이자 동지인 [[이밀]]을 더 위협적으로 볼 정도다. 봉기 이후 한때 10만이 넘는 민병을 모아 기세를 올리지만 군사를 맡은 이밀의 조언을 듣지 않고 독선을 부리다가 진압군에게 패배해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죽기 직전 자신이 이밀의 조언을 무시했던 것은 그의 뛰어난 지략을 시기했기 때문임을 고백하고 동생인 [[양적선]]에게 자신의 수급을 황제에게 가져가 목숨을 부지하라는 말을 남긴 후 사망한다. 동생 양적선은 형의 유언대로 수급을 들고 황제에게 찾아가 자비를 구하지만 결국 처형당하며 형을 따라가게 된다. 그리고 양광은 양현감의 목과 시체를 갈가리 찢어서 불태우고 그 재를 흩날리게 한다. 또한 양현감이 베풀어준 곡식을 단 한 톨이라도 얻어먹은 자들은 모두 생매장하여 죽이도록 한다. == 둘러보기 == [include(틀: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