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한국 광복군/군인]][[분류:용강군 출신 인물]][[분류:1890년 출생]][[분류:1950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국장]] || 성명 ||엄익근(嚴益根) || || 이명 ||엄인석(王仁石) || || 생몰 ||[[1890년]] [[10월 8일]] ~ [[1950년]] [[2월 29일]] || || [[출생지]] ||[[평안남도]] [[용강군]] 용월면 송암리 || || 사망지 ||[[서울특별시]] || ||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엄익근은 1890년 10월 8일 평안남도 용강군 용월면 송암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찍이 중국으로 망명해 청년전지공작대에 가입했다가 1940년 광복군의 창설과 함께 광복군 제 5지대에 편성되었으며, 의무대 군의관으로서 왕인석(王仁石)이라는 이명을 갖고 활동하였다. 1942년 4월 광복군 제5지대가 해체되고 제2지대로 편입됨에 따라 광복군 제2지대의 군의관으로서 광복을 맞이할 때까지 활동했다. 광복 후 서울로 귀국했고, 1950년 2월 29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2년 엄익근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 후손 == 엄익근은 중국으로 망명하기 전 윤을남(1894~1943)과 결혼하여 아들 엄윤희(1916~1987)를 두었다. 이후 중국으로 망명한 그는 독립군 동료였던 [[송영집]](1910~1984)과 결혼했으며, 엄윤희는 1943년 일본군의 강제 징집을 피해 중국 헤이룽장성으로 망명했다. 엄익근은 광복 후 송영집과 함께 귀국해 서울에 안착했지만, 엄윤희는 귀국하지 못했다. 엄윤희의 아들이자 엄익근의 손자인 엄근학씨는 1998년 한국에 들어와 불법 체류 생활을 하면서 2004년부터 법무부에 '국적 회복 신청서'를 제출했지만 [[국가보훈처]]가 중국 쪽 호적서류를 믿지 않으면서 곤경에 처했다.[[http://legacy.www.hani.co.kr/section-005000000/2005/04/005000000200504032029032.html|#]] 이후 엄근학 씨는 서울에서 친자 여부를 증명하기 위해 2년간 조사한 끝에 증빙서류를 찾아낼 수 있었고, 2006년 12월 21일 법무부로부터 국적 회복을 승인받고 서울 용산구청장이 발행한 주민등록증을 취득했다. 현재 그는 공사장에서 철근 기술자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http://legacy.h21.hani.co.kr/section-021013000/2007/01/02101300020070119064402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