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프랑스의 역사학자]] 까미유 에르네스트 라브루스(Camille-Ernest Labrousse)는 1895년 3월 16일에 태어나 1988년 5월 23일에 사망한 프랑스의 경제사학자다. 2세대 아날학파 역사학자들을 언급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지만, 실질적인 아날학파의 계승자는 [[페르낭 브로델]]이고, 라브루스는 독창적인 아날학파에 인구통계사와 경제사를 심화시켜 거시적인 계량경제사(cliometrics)의 전신을 설립한 면모가 강하다. == 생애 == 1895년 샤렁트의 수공업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좌파에 가까운 공화주의와 아나키즘에 심취한다. 1912년부터 [[소르본 대학교]]에서 역사를 전공하며 [[프랑스 혁명]]과 공포정치를 연구한다. 1926년부터는 정치경제학에 매료되어 경제사로 방향을 틀게 된다. 라브루스는 사회주의 운동자였다. 노동자 인터내셔날 프랑스 지부의 기관지인 류마니테의 기자였고, 소련 [[코민테른]]이 생성되어 사회당/공산당 분리되었을 때 공산당을 선택하지만 실망하고 1925년에 탈당한다. 사회당 복당 후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레지스탕스]]로 활동했다. 라브루스의 정치성향은 민생에 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그의 학술활동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가 쓴 글들은 [[마르크스주의]]에 현대 경제학을 접목한 것이었다. 또 다수의 박사 학위 논문을 지도하면서 70년대의 사학자들을 길러내는데도 기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