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독일제국군/군인]][[분류:독일 국방군 원수]][[분류:제1차 세계 대전/군인]][[분류:제2차 세계 대전/군인]][[분류:1876년 출생]][[분류:1960년 사망]][[분류:함부르크 출신 인물]][[분류:독일의 해군 제독]] [include(틀:독일 국방군/원수)] [include(틀:나치 독일의 전쟁범죄)] ||||<:> '''{{{#fff 독일 국방군 해군 원수 / 초대 독일 전쟁해군 최고사령관[br]{{{+2 에리히 레더}}}[br]Erich Räder}}}''' |||| ||||{{{#!wiki style="margin:-5px -10px 0px" [[파일:Erich_Räder.jpg|width=100%]]}}} || || {{{#FFF '''이름'''}}} ||<(>'''Erich Johann Albert Raeder[* Raeder를 라에더로 읽기 쉬운데, 독일어 Ä(에)의 대체 표기가 AE다. 따라서 Ä와 AE는 발음이 같다. [[괴테]](Goethe)의 oe도 이와 같은 원리.]'''[br] (에리히 요한 알베르트 레더) || || {{{#FFF '''출생'''}}} ||<(>[[1876년]] [[4월 24일]][br] [[독일 제국|[[파일:독일 제국 국기.svg|width=23]] 독일 제국]] [[함부르크 제국도시]] || || {{{#FFF '''사망'''}}} ||<(>[[1960년]] [[11월 6일]][br][[서독|[[파일:독일 국기.svg|width=23]] 독일연방공화국]] [[킬(독일)|킬]] || || {{{#FFF '''복무'''}}} ||<(> [[독일 제국 해군|황립 해군]](1894년 ~ 1918년)[br][[국가방위군]](1918년 ~ 1935년)[br][[독일 국방군]] [[크릭스마리네]](1935년 ~ 1945년) || || {{{#FFF '''최종 계급'''}}} ||<(>[[파일:AA-1A.png|width=32]] [[원수(계급)|해군 원수(Großadmiral)[* 이 단어를 일본쪽에서는 직역하여 대제독이라고 부른다.]]][* [[카를 되니츠]]와 함께 [[크릭스마리네]] 사상 단 2명뿐인 해군 원수였다.] || || {{{#FFF '''신장'''}}} ||168cm || || {{{#FFF '''주요 참전'''}}} ||<(> [[유틀란트 해전]][br][[베저위붕 작전]] || || {{{#FFF '''주요 서훈'''}}} ||<(> 기사 [[철십자 훈장]] || [목차] [clearfix] == 개요 == [[파일:external/germanwarmachine.com/raeder.jpg|width=400]] ▲ [[1939년]]의 모습.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독일]]의 [[해군]] [[제독]]. == 이력 == || [[파일:external/s25.postimg.org/Erich_Raeder_with_Hitler1.jpg|width=100%]] || [[파일:www_google_co_uk_20171029_192144.jpg|width=100%]] || ▲ (좌) [[아돌프 히틀러]]와 함께 찍은 사진, (우)제1차 세계 대전 참전 용사 행사에서 경례[* 유럽 원수들은 권위의 상징으로 [[원수 사령장|원수봉]]을 들었다 내리며 거수 경례를 대신했다.]를 하는 에리히 레더. 제1차 세계 대전 때부터 [[유틀란트 해전]] 등 주요 해전에 참여하였고, 전후에는 [[크릭스마리네]]의 재건에 힘썼다. [[1928년]] [[대장(계급)|대장]]으로 진급, 한스 젠커 제독의 후임으로 해군 총사령관 직무를 수행하였다. 레더는 나치 정권을 싫어하였지만 해군 재건 계획을 지지하였고, 히틀러는 그를 크릭스마리네의 수장으로 유임시켜 해군 [[상급대장]]으로 진급시켰다. 그리고 [[1939년]]에 알프레트 폰 티르피츠 이래 처음으로 해군 [[원수(계급)|원수]]에 임명되었다. [[프랑스 침공|프랑스 전역]] 종결 후 [[집단군]] 및 [[야전군]] 사령관들이 대거 진급하기까지, 레더는 전군에 단 3명뿐인 [[원수(계급)|원수]]로서[* 나머지 두 사람은 육군 원수 [[베르너 폰 블롬베르크]](1936년), 공군 원수 [[헤르만 괴링]](1938년).] 히틀러의 대외 행사를 수행하였다. 기록 영상 등을 보면 [[원수 사령장|원수 지휘봉]]을 쥐고 히틀러의 뒤를 따르는 레더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군의 원로이자 각료로서, 그는 새로운 1939년 제정 기사 [[철십자 훈장]]의 최초 서훈자로 선정되었다. 즉 공식 기사철십자장 1호 수훈자인데, 히틀러가 육군을 견제할 겸 국방군에서 한자릿수 내에 드는 원로인 레더 제독을 우대해 준 것이다. 단, 같은날 여러 명의 육공군 원수가 기사철십자장을 함께 받았으므로 상징적인 의미였다. 하지만 히틀러가 전쟁을 시작했을 때는 '''"이제 해군은 멋지게 죽을 일만 남았다."'''(혹은 전투명령 1호를 하달하면서 "제군, 이제 선택의 여지가 없다. '''용맹히 싸우고 장렬하게 전사하라.'''"라고 말했다고도 한다.)고 한탄했다. 이 말은 당시 열세한 전력인 독일 해군의 암울한 상황을 설명하는 유명한 말이 되었다.[* 당시 독일 해군은 [[Z 계획]] 등 전력 증강 계획을 이제 막 시작한 시점이었다. 해군 총사령관 에리히 레더 제독과 [[U보트]] 함대를 책임진 [[카를 되니츠]] (당시)[[대령]] 등 해군 수뇌부의 계획은 1945년까지 [[영국 해군]]과 맞설 수 있는 전력을 만든다는 것이었는데, 1939년에 히틀러가 덜컥 전쟁을 시작해 버린 것이다.] 레더는 독일 해군을 [[영국 해군]]과 [[영국 공군|공군]]으로부터 지키기 위하여 [[덴마크]]와 [[노르웨이]]를 선수 쳐서 터는 [[베저위붕 작전]]을 입안,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그라프 체펠린급 항공모함|항공모함]]의 [[함재기]]에 대한 문제로 [[공군]]의 [[헤르만 괴링]]과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아서[* 괴링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에이스 출신이었는데, 이것 때문에 자존심이 너무나 강했다. 해군은 물론이고 육군에서도 항공기 비슷한 게 보이면 자기 관할이라고 바락바락 우겨댔던 건 유명하다. [[헤르만 괴링#s-4.6|괴링은 "독일 상공에서 날개가 달려있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은 전부 내 관할이다"]]라는 말까지 했던 사람이다.] 늘상 대립하면서 고생했다. 1943년 [[바렌츠 해 해전]]에서 소련으로 가는 연합군의 수송선단을 독일 함대가 저지하지 못하자 히틀러는 격분해서 수상함대를 해체하라고 명령했고, 이에 항의하여 사임했는데 그가 사표를 내자마자 히틀러가 기다렸듯이 수리했다고 한다. 그가 히틀러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은 "총통께 부탁드립니다. '''제발 [[루프트바페]]로부터 저의 후임자와 [[크릭스마리네]]를 지켜주십시오'''." 레더 제독은 자신의 후임자로 북부 해역 해군 사령관 롤프 칼스 제독[* 1885.5.29 ~ 1945.4.15. 스페인 전역에서 독일 해군을 지휘한 기사 철십자 훈장 서훈자. 최종 계급 해군 상급대장. 1943년 3월 1일까지 북부 해역 사령관을 맡았으며, 총사령관 인선에서 탈락한 후 예비역이 되었다가 종전 전에 연합군 공습으로 사망했다.]과 잠수함 함대 사령관 [[카를 되니츠]] 제독을 추천했고, 히틀러는 되니츠를 2[[계급 특진]]시켜서 레더의 후임으로 임명한다. 1944년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이 벌어지자 그도 의심을 받았으나, 직접 히틀러를 알현하러 찾아와 충성을 맹세했다. [[파일:Defendants_in_the_dock_at_the_Nuremberg_Trials.jpg|width=500]] 전후 1945년 6월 23일에 레더는 전범으로 지목되어 소련군에 의해 리히텐베르크에서 체포되었다. 그 후 모스크바로 이송되었지만 1945년 10월 20일에 열린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의 피고였기에 다시 뉘른베르크로 보내져 수감되었다. 당 재판의 피고들은 군복 착용시 계급장, 서훈 등을 전부 소련의 요구로 강제 탈거히니야 했는데, 괴링과 카이텔, 요들은 부착물이 제거된 군복을, 되니츠는 사복 정장 차림으로 재판에 임했고, 레더는 퇴역한 민간인 신분이었으므로 처음부터 정장을 입었다. 그의 죄목은 침략전쟁의 공모 및 계획수립, 전쟁범죄 및 비인도적 행위에 관한 것이었는데 기소된 레더는 1946년 10월에 유죄가 확정되어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후임인 되니츠는 포로 강제 노역, 제3제국판 무제한 잠수함 작전 등을 지시했으며 전쟁법을 어기고서라도 목적을 이루어야 한다고 말한 확실한 전범인 반면, 되니츠와 다르게 레더는 베저위붕 작전을 계획, 실행한 것이 전부인데도 선고된 형량은 되니츠보다 높았다. 뉘른베르크 재판이 죄형법정주의적 측면에서 비판받는 이유 중 하나이다.] 레더는 이미 70에 가까운 고령을 이유로 감형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레더는 [[슈판다우 교도소]]에 투옥되었는데 1955년 9월 26일에 건강이 악화되어 석방되었다. 군항이 위치한 킬로 이사한 레더는 회고록인 <나의 생애>를 편찬했고, 되니츠와 함께 해군에서 큰 어르신 대우를 받으며 조용히 지냈다. 1960년 11월 6일에 84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장례식은 서독 해군의 주도 아래 진행되었고, 10년형을 마치고 만기 출소한 되니츠가 조사를 낭독했다. == 주요 보직 내역 == * 1925.1.10 ~ 1928.9.30 : 발트해 해군기지 사령관 * 1928.9.24 ~ 1928.9.30 : 해군 총사령관 겸임 * 1928.10.1 ~ 1935.5.31 : 바이마르 공화국 해군 총사령관 * 1935.6.1 ~ 1943.1.30 : 독일 국방군 해군 총사령관 * 1936.4.20 : 제국 국무위원 위촉 * 1943.1.30 ~ 1945.5.8 : 해군 감찰관 * 1945.6.23 ~ 1945.11.20 : 소련군에 체포, 모스크바 압송 후 구금 * 1945.11.20 ~ 1946.9.30 : 전쟁 범죄로 기소 * 1946.9.30 ~ 1955.9.26 :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 피고 출석. 반평화적 범죄를 위한 공모죄, 침략전쟁을 계획하고 실행한 죄 및 전쟁 범죄 항목에서 유죄 판결. 종신형 언도 후 복역 * 1955.9.26 : 건강상 석방 == 진급 내역 == * 1894.4.26 : 견습 생도(Seekadett) * 1895.5.13 : 예비 사관(Unterleutnant zur See) * 1897.10.25 : 소위(Leutnant zur See) * 1900. : 중위(Oberleutnant zur See) * 1905. : 대위(Kapitänleutnant zur See) * 1911.4.15 : 소령(Korvettenkapitan) * 1915.4.26 : 중령(Fregattenkapitan) * 1919.11.19 : 대령(Kapitän zur See) * 1922.8.1 : 소장(Konteradmiral) * 1925.4.1 : 중장(Vizeadmiral) * 1928.10.1 : 대장(Admiral) * 1936.4.10 : 상급대장(Generaladmiral) * 1939.4.1 : 원수(Großadmiral) == 주요 서훈 내역 == * 1907.6.22 : 프로이센 왕국 제정 붉은 독수리 무공 기장 4급 * 1911.9.5 : 프로이센 왕국 제정 붉은 독수리 무공 기장 관4급 * 1914.11.19 : 1914년 제정 2급 철십자 훈장 * 1915.2.18 : 1914년 제정 1급 철십자 훈장 * 1916.6.3 : 호엔촐레른 왕가 검 기사 십자 훈장 * 1926.5.31 : 명예 철학박사 학위(크리스티안 알브레히트 대학교) * 1934.12.5 : 최전선 전투 명예 십자 훈장 * 1936.8.16 : 올림픽 개최 명예 기장 1급 * 1937.1.30 : 국가사회주의 독일노동자당 금 명예 기장 * 1939.9.15 : 1939년 제정 2급 철십자 훈장 보장 * 1939.9.26 : 1939년 제정 1급 철십자 훈장 보장 * 1939.9.30 : 기사 철십자 훈장 '''(최초 서훈)''' == 기타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Bundesarchiv_Bild_146-1987-080-30A,_Erich_Raeder.jpg|width=500]] ▲ [[1928년]]의 레더. * 1930년대부터 해군이 정복 규정을 [[카이저마리네|옛 황제 해군]] 시절 복식이던 해군 [[CPO|상급 부사관]] 및 장교들의 옷깃 세운 [[턱시도]] 셔츠와 나비 넥타이 조합에서 칼라를 내리고 [[넥타이]]를 하는 형태로 개정했는데, 레더 제독은 혼자 ~~저 짬에 시비 거는 놈 없으니, 괜히 건들면 내 밑 니 위, 고르디우스 매듭 마냥 꼬이는 군생활~~ 개정 이전의 복식대로 입고 다녔다.[* 이는 독일군, 특히 장교들 사이에서 많이 보이던 특징으로, 군복을 사비로 맞춰 입어야 했기에 일부러 구형 복장을 따르거나 이런저런 ~~마~~개조를 하는 경우가 흔했다.] * 영화 뉘른베르크(2000)에서는 가브리엘 가스콘이 분했다. 재판 시작날에 "나는 무죄"라고 주장하는 대사 하나밖에 없고, 되니츠와는 달리 판결 장면에도 나오지도 않았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모습이 괴링의 뒤를 이어 감방으로 가는 장면 외에는 거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