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로마]][[분류:로마 역사 지구]] [include(틀:이탈리아의 세계유산)] [include(틀:로마의 일곱 언덕)] [목차] == 개요 == [[라틴어]]: Collis Esquilinus. [[이탈리아어]]: Esquilino. [[로마의 일곱 언덕]] 중 하나. 로마 4대 대성당 중 하나인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이 위치한 장소로 유명하다. == 지리 == [[파일:로마의 일곱 언덕.jpg]] 로마 구 시가지 동쪽에 위치하며, 로마의 일곱 언덕 중에서 가장 높고 가장 큰 언덕이다. 총 3개의 고지로 구성되었다. 남쪽의 고지는 오피오(Oppio), 벨리아 강과 접한 서쪽 부분의 고지는 파구탈레(Fagutale), 북쪽 부분의 고지는 시스피오(Cispio)로 일컬어진다. 이중 오피오가 58.3m로 가장 높다. == 역사 == 고대 로마 학자들은 이 언덕의 어원에 대해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았지만, 현대 학자들은 여러 해석을 제시했다. 몇몇 학자들은 교외 지역의 주민들을 부르는 라틴어 용어인 엑스퀼라에(Aexquilae)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하며, 또다른 학자들은 [[유피테르]]가 아낀 참나무 관목인 에스퀼리(aesculi)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한다. 세번째 가설은 [[로물루스]]가 티투스 타티우스가 이끄는 사비니족과의 전쟁 도중에 자신의 신변을 지키기 위해 소집한 엑스큐비아레(excubiae)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고고학자들은 기원전 8세기 중반에서 7세기 중반 사이에 세워진 공동 묘지를 토대로 기원전 8세기부터 인간이 이 언덕에 거주했을 거라고 추정한다. [[로마 왕국]] 초기에는 공동 묘지가 세워진 외곽 지역으로 간주되었으며, 고대 로마의 가장 오래되고 저명한 귀족 가문으로 손꼽히는 파비우스 가문의 무덤도 여럿 발견되었다. 그러다가 [[로마 왕국]] 6대 국왕 [[세르비우스 툴리우스]]가 이 언덕의 일부를 로마 시의 경계인 포메리움에 포함시켰고, 세르비우스 왕이 세웠다고 전해지는 세르비우스 성벽으로 둘러싸였다. 이때 에스퀼리누스 언덕에 세워진 '에스퀼리누스 성문'은 세르비우스 성벽 중에서 유일하게 현존하는 유적지다. 이후 주민들이 이 언덕에 이주했고, 나중에는 세르비우스가 새롭게 신설한 4개의 도시 부족 중 하나가 이 언덕을 거점으로 삼았다. 로마 전승에 따르면, 파구탈레와 오피오 고지 사이의 경사면에 자리잡은 카리나 마을에서 툴리아가 땅바닥에 쓰러져 있던 아버지 세르비우스 툴리우스를 말이 끄는 전차로 짓밟아 죽였다고 한다. [[로마 공화국]]이 출범한 후인 기원전 494년, 귀족들이 빚을 갚지 못한 평민을 노예로 삼는 관행을 금지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에 격분한 평민들이 루키우스 시시니우스 벨루투스의 인도하에 로마를 떠나기로 결의하고, 에스퀼리노 언덕에 집결한 뒤 아니오 강 뒤편에 있는 성산(聖山, 현재 이탈리아 로마 몬테 사크로(Monte Sacro))로 이동했다. 그들은 산 꼭대기에 요새를 세우고 도랑을 파, 로마와는 별도의 도시를 세우려 했다. 이로 인해 로마가 망할 위기에 몰리자, 귀족들은 어쩔 수 없이 평민들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했고, 평민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호민관]]이 공식적으로 설립되었다.(제1차 [[성산 사건]]) 이후 에스퀼리노 언덕은 귀족 및 부유한 평민들의 휴양지로 이용되었고, [[아우구스투스]]의 심복이자 문인 후원자로서 명성을 떨친 [[가이우스 킬리니우스 마이케나스]]는 이곳에 아름다운 정원을 세웠다. 이 정원은 로마의 대표적인 명승지로 손꼽혔고, 훗날 [[티베리우스]] 등 후대 황제 및 황족들이 이곳에서 휴양하곤 했다. 반면 아르길레툼(Argiletum, "제화공의 거리"), 수부라, 마케리움(Macellum, "도살장") 등 서민들이 집단 거주하는 지역도 있었는데, 이중 수부라는 매춘업이 성행하고 가난한 서민들이 북적이는 지역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어린 시절을 수부라에서 보냈다고 전해지며, [[베르길리우스]], [[소 플리니우스]]도 에스퀼리노 언덕에 살았다고 전해진다. 세르비우스 성벽 외곽에 남아있는 언덕 부분에는 로마에서 가장 가난한 이들이 집단 거주했고 묘지로도 사용되었으며, 일부는 공용 밭으로 사용되었다. 64년 [[로마 대화재]]를 수습하던 [[네로]] 황제는 화재로 불살라진 광대한 지역에 도무스 아우레아(Domus Aurea: 황금 궁전)를 세우기로 했다. 이때 에스퀼리노 언덕의 오피오 고지 상당수가 도무스 아우레아 부지에 포함되었다. 그러나 도무스 아우레아 공사는 68년 [[갈바]]의 반란과 [[원로원]]의 갈바 지지, [[프라이토리아니]]의 배신으로 궁지에 몰린 네로가 자살하면서 중단되었다. 한편 에스퀼리노 언덕에는 [[이시스]] 신전, [[미네르바]] 메디카 신전, [[헤라클레스]] 쿠스토스 신전 등 해외에서 유래한 여러 신을 섬기는 신전들이 세워졌으며, 귀족과 부유한 시민을 위한 여러 목욕탕이 개설되었는데 그 중 [[트라야누스]] 목욕탕만 현존하고 있다. 325년 로마 4대 대성당 중 하나인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이 시스피오 고지에 세워졌고, 4세기경에 [[순교자 유스티누스]]를 기르기 위해 성 유세비우스 성당이 세워졌고, 442년 [[발렌티니아누스 3세]]의 황후인 [[리키니아 에우독시아]] 황후가 오피오 고지에 산 피에트로 인 빈콜리 성당을 세웠으며, 8세기경 산타 프라세데 대성당이 세워졌다. 1655년에는 피에트라포르테 후작 마시밀리아노 사벨리 팔롬바라가 자신의 거주지인 빌라 필롬바라에 포르타 알케미카(Porta Alchemica)을 세웠다. "신비의 비문", "마법의 비문"으로도 불리는 이 곳에는 연금술에 사용되는 수많은 상징이 새겨진 비문이 세워져 있으며, 비문 양쪽에는 짧고 통통한 다리와 기괴한 턱수염을 기른 얼굴을 가진 변형된 생물을 묘사한 조각상이 세워져 있다. 1871년 로마를 수도로 확정한 [[이탈리아 왕국]]은 대대적인 재개발 사업을 단행했다. 이때 에스퀼리노 언덕 전역이 집중적으로 재개발되었고,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광장을 중심으로 한 제15 에스퀼리노 지구를 형성했다. 현재 에스퀼리노 언덕은 도시화가 잘 된 구역으로 손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