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로마 아우구스타)] || '''이름''' ||엘레니 드라가시[br](그리스어: Ἑλένη Δραγάση, 세르비아어: Јелена Драгаш)|| || '''출생''' ||[[1372년]]경|| || '''사망''' ||[[1450년]] [[3월 23일]]|| || '''아버지''' ||콘스탄틴 데야노비치|| || '''어머니''' ||트라페준타의 에우도키아(양모)|| || '''남편''' ||[[마누일 2세]]|| || '''자녀''' ||콘스탄티노스 팔레올로고스, [[요안니스 8세]], [[테오도로스 2세 팔레올로고스]], 안드로니코스 팔레올로고스, 미하일 팔레올로고스, [[콘스탄티노스 11세]], [[디미트리오스 팔레올로고스]], [[토마스 팔레올로고스]]|| [목차] [clearfix] == 개요 == [[동로마 제국]] [[팔레올로고스 왕조]]의 [[아우구스타]], [[로마 황제|동로마 황제]] [[마누일 2세]]의 [[황후]]. == 생애 == [[1372년]]경 세르비아 왕국의 지방 영주였던 콘스탄틴 데야노비치의 딸로 출생했다. 친모가 누구인지는 알려지지 않았고, 유년기에 양모인 [[트라페준타의 에브도키아]]에게 양육되었다. 부친 콘스탄틴은 [[오스만 술탄국]]의 [[바예지트 1세]]의 봉신이었으며, [[1395년]] 로바인 전투에서 전사했다. 엘레니는 [[1392년]] [[동로마 제국]]의 [[황자]] [[마누일 2세]]와 혼인하였고, [[1399년]] 남편이 황제가 되면서 [[황후]]로 즉위했다. 그녀는 남편과의 사이에서 콘스탄티노스 팔레올로고스, [[요안니스 8세]], [[테오도로스 2세 팔레올로고스]], 안드로니코스 팔레올로고스, 미하일 팔레올로고스, [[콘스탄티노스 11세]], [[디미트리오스 팔레올로고스]], [[토마스 팔레올로고스]]를 낳았다. 이외에도 두 딸을 낳았지만 성명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1425년]], 마누일 2세는 [[오스만 술탄국]]의 콘스탄티노폴리스 침공을 가까스로 막아낸 뒤 황위에서 물러나 '마테오스'라는 이름의 [[수도자]]로 지내다 7월 21일에 사망했다. 엘레니 역시 키라 마르타 [[수도원]]의 수녀가 되었고, "절망한 자들의 희망"이라는 이름의 양로원을 성 베드로 수도원 내에 짓는 걸 도왔다. [[1448년]] 장남 요안니스 8세가 사망하자, 콘스탄티노스 11세와 디미트리오스 팔레올로고스가 차기 황제를 놓고 대립했다. 그녀는 콘스탄티노스를 지지했고, 콘스탄티노스가 [[1449년]] 콘스탄티노폴리스에 도착할 때까지 [[섭정]]을 맡았다. 콘스탄티노스 11세는 황위에 오른 뒤 엘레니의 이름을 따서 자신의 이름을 콘스탄티노스 드라가시스 팔레올로고스라고 지었다. 엘레니는 [[1450년]] 3월 23일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사망했다. 그녀의 사망일은 [[정교회]]에서 기념되고 있으며, 그녀의 [[두개골]]은 [[성유물]]로 취급되어 그리스 로우트라키에 있는 성 파타피오스 수도원에 보관되고 있다. [[분류:동로마 황후]][[분류:세르비아계 인물]][[분류:아우구스타(동로마)]][[분류:팔레올로고스 가문]][[분류:1372년 출생]][[분류:1450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