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원나라의 인물]][[분류:1285년 출생]][[분류:1333년 사망]] [include(틀:원사)] [목차] == 개요 == Яньтөмөр / 燕鐵木兒 / 연철목아 (1285 ~ 1333) [[원나라]]의 [[권신]]이자 [[킵차크 칸국]]의 군인. == 행적 == 킵차크 칸국 바야우트부[* 명나라에서 편찬한 《원사》(元史)에서는 킵차크씨(欽察氏)로 표기하고 있고, 20세기 중화민국에서 재편찬한 《신원사》(新元史)에선 바야우트씨(伯岳吾氏)로 표기하고 있다.]의 부족장 집안 출신으로 소년 시절부터 카이산을 따라 전장에서 활약했고, 카이산이 [[무종(원)|황제가 되자]] 사령관이 되었으며, 무종 사후에도 요직을 맡았다. 1328년 7월에 [[진종(원)|원 진종]] 이순테무르가 붕어하고, 8세의 어린 황제인 [[천순제(원)|천순제]] 라기바흐가 즉위하자 반란을 일으켰다.('''양도전쟁''') 이때 엘테무르는 무종 카이산 칸의 아들 투그테무르를 황제로 옹립하자고 주장하며, 진종의 신하들을 옥에 가둔 후, 수도 대도로 온 투그테무르를 영접했다. 북쪽 상도의 다울라트 샤가 군대를 이끌고 남쪽의 대도를 공격하자 [[문종(원)|투그테무르를 황제로 즉위시키고]], 군대를 지휘하여 다울라트 샤의 상도 군대를 격파하며 내전('''양도전쟁''')을 끝냈는데, 문종은 즉위 이전에 형 쿠살라가 카라코룸으로 오면 제위를 내줄 것이라고 약속했기 때문에 쿠살라를 불러들였다. 결국 문종이 양위하여 [[명종(원)|쿠살라가 즉위하게 되자]] 엘테무르가 가서 옥새를 넘겼는데, 대도로 향한 후, 즉위 축하 연회가 열렸다가 4일 뒤 명종이 의문사를 당하자('''천력의 변''') 엘테무르는 옥새를 빼앗아 문종을 복위시켰다. 역사학자들은 문종과 엘테무르가 계획한 독살로 보고 있다. 엘테무르는 태사, 중서우승상 등에 임명되어 권세를 휘둘렀고, 늘 연회를 베풀어 40여 명의 종실 여인을 소유했으며, 선제 진종 태정제의 후궁도 자신의 여자로 삼았다. 첩이 너무 많아 자신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라서 어느 날 관리의 집에서 '원앙회'라는 연회를 베풀었는데, 한 아름다운 여인을 보고 저 여인이 누구냐고 물었다. 이때 자신의 첩실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주위 사람들이 소리없이 비웃었다고 한다. 엘테무르의 권세가 얼마나 컸는지, 명종 쿠살라 칸의 장남 토곤테무르의 외가가 한미하다는 이유로, 명종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트집을 잡아 [[고려]]의 [[대청도]]로 유배를 보냈으며, 이후 광서 지방으로 유배지를 바꾸기도 했다. 1332년, 문종은 형인 명종 쿠살라를 죽인 것에 대한 속죄때문이었는지 명종의 아들을 자신의 후계자로 삼으라는 유언을 남기고 붕어했다. 엘테무르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딸 [[다나시리]]를 토곤테무르와 결혼시켰지만, 안심이 안 되어서인지 그를 재끼고, [[영종(원, 10대)|명종의 차남 린칠반을 황제로 세웠다.]] 그러나 영종이 얼마 후 붕어하자, 엘테무르는 문종의 아들 엘테구스를 황제로 즉위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엘테구스의 모후인 [[부다시리]]가 이를 반대해 어쩔 수 없이 명종의 장남 토곤테무르의 즉위를 인정했지만, 정식 등극은 미뤘다. 이러던 사이 엘테무르가 주색으로 인해 병으로 사망하게 되었고, 드디어 [[혜종(원)|토곤테무르가 정식으로 황제가 되었다.]] == 대중매체 == 2013년 MBC 드라마 <[[기황후(드라마)|기황후]]>에서 배우 [[전국환]]이 맡았다.